다 보여주마, 빗소리·음악소리·별의별 소리

고요 속에서, 오래된 포석(鋪石) 위로 빗줄기가 떨어진다. 타닥, 타닥….명징하면서 절도 있는 소리. 설치미술가 김기철(42)은 종묘의 돌바닥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채집, 어떻게 그 소리를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는 검은색 사발 모양 스피커 유닛(상자에 장착하지 않은 스피커) 75개를 준비하고, 길이 6.5m 낚싯줄 끝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매달았다. 어두운 전시장 안에서 낚싯줄이 은색 빗줄기처럼 반짝이고, 스피커에서는 빗소리가 흘러나온다. 작품 제목은 '소리 보기-비'(1995~2012).

7월 1일까지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x_sound: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는 귀로 듣는 전시다. '소리'를 주제로 삼은 세계 각국 예술가 14명이 귀와 눈의 협업(協業)을 고심한 결과다. 일본 실험음악가 오토모 요시히데(53)는 빈티지 턴테이블 90개를 설치하고, 그 위에 레코드 대신 골판지나 철로 만든 소품을 놓은 작품 '위드아웃 레코드'(2008)를 선보였다. 각 턴테이블은 한 시간에 한 번 작동한다. 턴테이블 바늘과 골판지, 철이 부대끼며 내는 마찰음, 턴테이블의 다양한 빛깔과 형태가 만나서 한 '작품'을 이루는 셈이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 2006)과 백남준에게 영감을 준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Cage· 1912~1992)에게 후배 예술가들이 바치는 헌사(獻辭)다. 케이지는 1952년 독일 도나웨신겐에서 개최된 현대음악제에서는 피아노 앞에 앉아 '4분 33초'간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고 자리를 뜸으로써 정적과 청중의 웅성임, 기침 소리 등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획기적인 음악가다. 독일에서 활동 중이던 백남준은 1958년 케이지를 처음 만났고, 그의 실험과 선(禪)사상에 큰 자극을 받아 설치 작품과 퍼포먼스를 통해 '소리'를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올해는 백남준 탄생 80주년이자, 케이지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전시장에는 백남준이 케이지에게 경의를 표하며 제작한 비디오 설치작품 '새장 속의 케이지'(1990), 피아노 현(絃)에 나사·못·대나무·플라스틱 조각 등을 끼워놓아 예상치 못한 소리가 나도록 만든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1946) 등 두 사람의 영향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 10여점도 나왔다. (031)201-8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