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붓끝으로 외친다

이 화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20년째 같은 주제, 비슷한 화풍(畵風). 심지어 그림 제목도 똑같다.

"지겹지 않은가" 물었더니 "난 새로운 게 없어요"라고 태연하게 답한다. "난 내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그려요. 내가 사는 곳에서 보고 느낀 것만 그립니다. 서울 공장 지대로 날 옮겨 놓는다면 확연히 다른 그림이 나오겠지만, 제주도에 사는 이상 같은 그림을 그리는 수밖에 없어요. 다만 갈수록 강한 색채를 쓰려고 애를 쓰긴 합니다."

'서귀포의 화가' 이왈종(67) 이야기다. 그의 개인전이 13일부터 내달 1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린다. 2년 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 출품작은 회화, 조각, 도자기 등 60여점. 작품 제목은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다. '중도(中道)'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집착을 버리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무심(無心)의 경지'. 이왈종이 1990년 추계예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간 후부터 계속 몰두해왔던 주제다.

"1989년 안식년으로 한 해 쉬면서 제주에 내려가 있었는데 1년 있어보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싫더라고요. 일단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어 좋았어요. 게다가 풍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에 겨울에도 꽃이 피더라니깐! 사시사철 푸르러, 겨울엔 매화꽃 흐드러져, 봄엔 동백이 피어, 초겨울엔 샛노란 감국(甘菊)에…."

경치에 반하고,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고요한 생활환경에 이끌려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보금자리를 정했다.

그 이후로 화풍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 살 땐 고속도로, 한강대교 등의 실경(實景)을 기하학적 발묵(潑墨)산수로 그렸지만, 제주에 온 이후부터는 꽃 피고, 새 울고, 동물들이 뛰어노는 평화로운 풍경을 화사한 색채로 그려낸다. 이번 전시에도 나뭇가지가 휘어져라 붉은 매화가 가득 핀 가운데 마당에서 강아지와 함께 놀고 집 청소를 하는 풍경, 커다란 동백나무 위로 연인 한 쌍이 날아다니는 그림 등을 내놓았다.

그는 "현실은 너무 흔해빠진 거니까 그대로 그리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나는 '세상이 이렇다'는 것보다는 '세상이 이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싶다. 내 그림을 보는 사람이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