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무덤 수두룩… 북한산 '참나무 에이즈' 심각

"우르릉우르릉. 우지끈." 북한산이 신음을 내는 것 같았다. 9일 오후 2시 45분쯤 서울 강북구 북한산 하루재 등산로 어귀에서 전동 톱이 병든 참나무 허리를 베어냈다. 지름 30㎝ 굵기 참나무가 5분 만에 허리가 끊기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참나무 방제 근로자 6명이 "조심해, 조심. 넘어간다"고 소리를 지르며 나무를 잘랐다.

속절없이 넘어가는 이 참나무들에는 하나같이 좁쌀만한 구멍이 듬성듬성 뚫려 있었다. '참나무시듦병'이었다. 참나무시듦병은 매개충(蟲)인 광릉긴나무좀이 참나무에 파고들어가 곰팡이를 퍼뜨리고, 번식한 곰팡이가 나무 도관(導管)을 막아 수분·양분을 차단, 나무를 말려 죽이는 전염병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참나무시듦병'은 치료제도 따로 없어 '참나무 에이즈'라고까지 불린다"며 "병원균이 퍼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아 구청 차원에서도 북한산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곳곳이 '나무무덤'

방제 작업은 단순하지만 품이 많이 든다. 나무 몸통에 구멍이 많이 뚫리고 말라붙은 잎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도 않은 채 대롱대롱 매달린 중증 나무를 찾아내 베어내는 것이다. 중증 나무는 밑동 부분에 매개충이 구멍을 뚫느라 생겨난 톱밥이 수북이 쌓여 있기도 하다.

벌채가 끝나고 나서도 덩치 큰 참나무는 다시 1m 정도 길이로 일정하게 잘라내야 한다. 자른 나무를 평평한 곳에 옮겨 가지런히 쌓아놓고 농약의 일종인 메타소디움을 뿌려 비닐로 덮는 훈증방제 활동까지 해야 한다. 벌채한 나무를 태우려면 너무 많기도 하고, 환경오염이나 산불 우려도 있기 때문. 지름 30㎝가량 나무들을 이같이 방제 처리하는 데는 꼬박 2시간 가까이 걸린다.

방제팀 양종기(60)씨는 "하루에 8시간 6명이 함께 작업을 하는데, 나무 5~6그루를 벌채하고 방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북구는 작년 9~12월 700그루를 이미 벌채하고 훈증 작업을 마쳤으며, 올해도 이달 1일부터 11월까지 650그루를 벌채·훈증할 계획이다. 등산로 곳곳에는 나무 무더기에 약제를 뿌려 비닐을 덮은 '나무무덤'이 수두룩했다.

◇고사(枯死)한 나무 베는 데 60년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북한산 전체 수목 가운데 참나무는 약 70%인 270만 그루 정도. 이 중 시듦병에 피해를 본 나무는 약 158만그루(58.5%)에 이른다. 고사한 나무는 이 중 11만그루(4.1%). 강북구에서 매일 평균 5그루씩 베어낸다고 해도 11만그루를 모두 베는 데는 2만2000일(60.27년)이 걸린다. 더 큰 문제는 고사한 나무를 제외하더라도 시듦병이 심각한 참나무가 24만그루(8.8%), 중간 정도 상태가 43만그루(16.1%), 미미하게나마 피해를 본 나무가 80만그루(29.6%)에 이른다는 것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참나무시듦병이 처음 보고된 것은 2004년 경기도 지역에서였다. 서울에서는 2006년 노원구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북한산 참나무의 60% 가까이가 이 병에 시달리며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다.

김익순 강북구 자연생태팀장은 "북한산은 작년 5~6월부터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잎사귀 색이 변하는 나무들이 확 늘더니, 이제는 오히려 멀쩡한 참나무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뾰족한 해결책 없어 고민

더 심각한 건 마땅한 방제책이 없는 상황에서 병든 참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면 한순간에 북한산 등 주요 산이 민둥산이 돼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1990년대 소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솔잎혹파리가 급증했지만, 소나무에 내성이 생겨 이겨낸 것처럼 참나무류 내에 자체 면역력이 생길 수도 있다"며 "우선 실태를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강북구는 시듦병 사태를 국가적 위기로 지정, 대대적 지원과 방제 작업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고사한 참나무는 빨리 베어내고 소나무 등 다른 나무로 수종을 점차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