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은 야구팀, 나는 감독"

"최고의 프랑스 레스토랑이 프랑스 바깥에 있다니!" 프랑스 권위지 르 몽드의 음식 평론가를 감탄 혹은 절망시킨 식당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작은 도시 욘트빌에 있는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이다. 영국 음식전문지 '레스토랑'이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2003·2004년 2년 연속 선정했고, 2007년 프랑스 레스토랑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아 유지하고 있는 명문 식당이다. 이곳의 총주방장은 토머스 켈러(Thomas Keller·57)이다. 그가 뉴욕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퍼 세(Per Se)'도 미슐랭 별 3개를 획득했다. 삼성카드와 신라호텔 초청으로 갈라디너 행사를 갖기 위해 서울에 온 이 스타 요리사를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당신은 어느 나라 요리를 하나. 식당 홈페이지에는 "프랑스 요리에 영향을 받은 현대 미국 요리"라고 돼 있던데.

"프랑스에서 배웠고 미국에서 미국 식재료로 요리하니 홈페이지 설명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파인다이닝(fine dining·고급 외식 전반을 아우르는 용어)에선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 요리사의 개성·독창성이 중시된다. '토머스 켈러의 음식을 맛본다'고 하지 '미국 음식을 먹는다'고 하지 않는다."

―"요리사로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접시닦이를 하며 배웠다"고 했다.

"어릴 때 어머니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면서 요리의 기본 요소를 배웠다. 일감을 조직하고 분류하고 어떻게 해야 효율적일지 고민하고, 함께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피드백을 들었다. 단순 반복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다."

―단순 반복작업은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인가.

"요리사건 의사건 운동선수건 자신이 하는 일을 반복하면 누구든 더 잘할 수 있다. 반복을 통해서 조금씩 개선이 일어나고, 음식이 진화한다. 물론 즐겁지는 않다. 하지만 내 요리가 진화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사소하지 않다"고도 했던데.

"음식은 방정식이다. 요리기술에 재료, 서비스 등 여러 요소를 더해야 음식이 된다. 요리사들이 종종 착각하곤 하는데 이 방정식에서 기술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란 거다. '뛰어난 음식에 형편없는 서비스'와 '괜찮은 음식에 뛰어난 서비스', 어느 쪽이 다시 찾고 싶은 식당이겠는가? 당연히 후자이다."

―보통 견습요리사만 착용하는 파란색 앞치마를 수석부주방장까지 모두 입게 하는 이유는.

"요리사는 배움을 멈추면 안 된다. 견습생의 마음가짐, 자세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손님에게 서비스하는 웨이터들을 무용수에게 훈련받게 했다던데.

"퍼 세를 오픈할 때였다. 손님에게 서비스를 하다 보면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 개인 공간을 침범하게 된다. 손님에게 불편함을 준다. 춤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 상호작용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어떻게 움직여야 손님이 불편해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재해석하란 의도였다."

―요리를 운동에 종종 비교하는데.

"레스토랑은 야구팀과 비슷하고, 나는 야구감독과 비슷하다. 훌륭한 선수를 선발해 훈련시키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훌륭한 팀으로 유지될 수 있다."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식을 먹어본 적 있나.

"김치, 불고기, 갈비 정도는 잘 안다. 하지만 한식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할 정도로 알지 못한다. 한식 그리고 아시아 음식은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매력을 느낀다."

―한국에서 해 보고 싶은 일은.

"나는 세상에 새롭게 창조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나의 요리 철학이 불교(의 윤회사상)와 비슷하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경북 김천 청암사를 찾아가 사찰음식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어떤 영감을 받을지 기대된다."

―한식 세계화에 대해 조언해 준다면.

"음식은 그 나라를 벗어나면 변질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보라."

―요리사로서 추구하는 목표는.

"손님들이 내 요리를 먹고 나서 '아, 이 요리는 내가 5년 전 있었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요' '이 음식을 먹으니 10년 전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생각나게 하네요'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부와 명예는 허무하다. 추억이 풍요로운 이가 진정한 부자이다."


◆토머스 켈러는…

토머스 켈러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1983년 프랑스 최고급 식당에서 일하며 요리의 기본을 다진 뒤 1994년 '프렌치 론드리'를 인수해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프렌치 론드리'는 프랑스식 증기세탁기가 있던 세탁소 자리에 만들었다 해서 붙은 이름. 이 식당의 9개 코스 메뉴는 1인당 270달러(약 30만원). 미슐랭가이드는 "세심한 기술과 기쁨이 완전무결한 정밀함과 결합해 미각을 깨워 일으키는 음식을 만들어낸다"고 극찬했다. 켈러의 외식 기업 '토머스 켈러 레스토랑 그룹(TKRG)'은 미국 전역에서 식당 8개, 빵집 4개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