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20] "참 야릇한 광고법일세" 치약 광고에 벗은 여성 등장

1923년 9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인단(仁丹)' 치마분(齒磨粉·오늘날의 치약) 광고엔 가슴을 드러낸 여성이 이를 닦는 모습의 삽화가 곁들여져 있다. 호기심을 자극해 소비자들 시선을 끌어보려는 섹스 어필 마케팅의 초보적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인쇄매체 광고들은 1920년대 조선일보 창간 초기부터 기법 면에서 근대적 세련미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구한말 신문광고들이 아무런 그림도 헤드라인도 없이 그저 '광고'라고 제목을 달고는 "○○을 파는데 갑도 적고 물건이 됴흐니 와셔들 사가시오"('뎨국신문' 1898년 9월 20일자)라는 식으로 빼곡한 활자로만 투박하게 알린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1922년 고무신 광고들은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아우였던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한국 고무신을 최초로 신었음을 내세웠다. '광고 모델'개념을 도입한 셈이다. 왕족 중 항일 의식이 가장 강했던 이강을 끌어들여 동포들에게 어필하려고 했던 것이다.

초창기 신문광고들은 사진 대신 그림을 많이 삽입했다. 구두 판매점은 '소가죽'구두임을 강조하려고 구두 광고에 소 그림을 큼지막하게 싣기도 했다.(1923년 10월 23일자) 그림 중에서도 미녀 그림을 곁들인 광고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화장품이나 비누·치약 등 여성과 관련 있는 광고는 물론이고 소화제·고혈압 약 광고까지 야릇한 여성 그림들을 많이 쓴 사실은 흥미롭다.

1920년대의 소화제인 '활명액(活命液)'광고(1927년 11월 21 일자)나 피부병약 '요찌수(水)' 광고(1927년 11월 23일자)는 약속이나 한 듯 가슴 노출 여성 삽화를 곁들였다. '활명액'광고는 여성의 벗은 몸을 그리는 게 좀 민망했던지 '위장 내벽을 강건(强健)하게 하는 양약' 등 캐치프레이즈 2개로 그림 일부분을 슬쩍 가렸다. 그러나 몇 해 뒤 실린 동맥경화 예방약 광고는 과감하게도 가로 6㎝, 세로 12단 전단을 차지하는 지면에 두 팔을 치켜든 가슴 노출 여성의 그림을 게재했다.(1927년 3월26일자) 이 광고는 이날을 끝으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여성의 사진을 쓴 광고는 발견하기 어렵다.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여성을 상품 마케팅에 쓰는 것에 대한 당시 사회의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실제로 1928년 독일 베를린의 어느 과일 가게가 미인을 과일 좌판에 세워 판촉하는 외신 사진을 보도한 기사는 "아조 제일 어엽분 미인을 택해서 상품과 함께 진렬"했다며 "참 야릇한 장사치의 광고법"이라고 비판적으로 썼다.(1928년 1월 25일자) 1929년 9월 일본인 상인들이 '마네킹 걸'을 이 땅에 도입해, 젊은 여성 모델로 하여금 거리에서 광고 피켓을 들고 꼼짝 않고 서서 행인들 시선을 받게 하자 조선일보는 "라체(裸體) 모델보다도 보기에 미안한 직업""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극"이라고 강력 비난했다.(1929년 9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