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오르는데 정유株 하락 '기현상'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주식시장의 수혜주 판도가 예상과 달리 바뀌고 있다. 유가가 상승할 때 함께 오르는 정유주가 오히려 하락하는가 하면, 건설과 조선, 종합상사 관련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상승하면 정유주도 오른다. 정유사는 미리 재고 물량을 확보하기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이 상승분을 재고 물량에 반영, 실적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유가와 정유주가 거꾸로 움직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에 정유 업체의 원가 부담이 커졌고,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로 유가 상승이 오히려 정유주에 악재가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치솟는 유가에 정유주 속수무책

13일 정유주 3사는 일제히 반등했다. SK이노베이션이 2.3% 상승했고, S-OilㆍGS도 각각 3.3%, 2.8% 올랐다. LG화학ㆍ한화케미칼ㆍ코오롱인더스트리ㆍ호남석유 등 화학주도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전날 국제 상품 시장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가 소폭 하락한 것이 이날 주가에 '깜짝 호재'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유가가 상승할 때 정유주도 오르지만, 최근 유가가 급등하며 정유·화학 업체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탓에 유가가 하락하자 관련주가 반등한 것이다.

지난 2월 둘째 주까지, 원유를 정제해 석유 제품을 만드는 업체의 정제 마진이 상승했지만, 2월 말부터 최근까지는 정제 마진이 하락했다. KB투자증권의 박재철 연구원은 "석유제품 가격은 더디게 오르고 있는데, 유가가 상승하고 있어 한 달째 정제 마진이 하락하고 있다"며 "유가가 하락해야 정유 업체의 정제 마진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올해 두바이유 가격 추이와 대표적인 정유주 SK이노베이션의 주가 추이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달 중순까지 유가 상승에 힘입어 SK이노베이션 주가도 올랐지만, 2월 말부터는 원유 가격 방향과 SK이노베이션 주가가 반대로 움직였다.

◇건설·조선주, '어부지리'로 상승

가파른 유가 상승에 전통 수혜주 정유업체도 직격탄을 맞았지만, 생각 외의 반사이익을 얻는 업종도 있다.

올해 원유 가격이 뛰어오르는 사이, 조선주 현대중공업과 건설주 현대건설은 각각 26.8%, 19.6% 상승했다. 자원개발업체 대우인터내셔널은 22.9% 올랐다.

전문가들은 가격이 높은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원유 대체재'를 생산하는 업체가 주목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래에셋증권의 권해순 연구원은 유가 상승으로 대우인터내셔널과 LG상사 등 종합상사기업의 자원개발 부문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고 있다며 이들 기업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유가가 상승하면 대체 자원 개발의 가치가 높아지고, 자원 개발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조선주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 등 LNG(액화천연가스)선을 생산하는 국내 대형 조선 업체는 수주 성적이 좋아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원유 대신 LNG가 이용될 가능성이 커지다 보니 수요가 생기는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 건설 프로젝트 수주 성적이 좋은 대형 건설사의 주가도 많이 올랐다. 현대건설을 비롯해 삼성엔지니어링과 대림산업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NH농협증권의 강승민 연구원은 "유가가 오르면 석유 수출 비중이 높은 중동 지역 국가가 정제, 화학 플랜트 관련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이에 따라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유가 상승으로 기대되는 반사이익이 이미 건설주에 반영된 상태이기 때문에 건설주가 더 오르려면 실제로 해외 플랜트 수주 소식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