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21] '철학박사 음악가'의 금의환향

"이 음악이야말로 지금까지 가저오든 어느 음악회보다도 가장 내용이 우수하고 풍부한 것으로 우리 악단의 수준을 몃층이나 놉힐 최대의 것이 될 것… 씨의 음악적 해석의 심오함은 물론 연주될 곡목이 또한 이 땅에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하든 세게적 명곡이요…."

조선일보는 1935년 5월 14~15 연일 사회면 머리기사로, 독일에서 10여년 만에 귀국해 첫 독주회를 여는 계정식(桂貞植) 박사의 '대음악회'에 온갖 찬사를 보냈다.

일찍이 '조선 소년 음악계의 패왕'으로 알려진(1921년 6월 5일자) 그는 독일 유학을 떠나기에 앞서 고향 평양과 서울에서 고별음악회를 열었음에도, 그의 바이올린 소리를 아끼는 음악가들이 재차 송별음악회를 열어 연주를 청할 정도로, 악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1923년 10월 27일자)

출국 10년 만에 '조선 악단의 총아'로 기대를 모았던 그의 귀국 소식이 전해졌다. '조선인으로뿐만 아니라 동양인으로서 독일 신학제에 의한 최초의 영예로운 음악 학위까지' 받은 그가, 현지 마지막 독주회에서 아악태평지곡·방아타령 등 조선 곡조를 바이올린 곡으로 편곡해 연주해 큰 호평을 받았고, 늦어도 '금년 가을까지는 어김업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1933년 2월 20일자)

그러나 그의 귀국은 2년이 더 지난 뒤였다. 독일 올스부룩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니체가 교수를 지냈던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딴 뒤, '독일 유학 12년에 명예로운 박사학위와 명 연주가의 명성을 날리며', 1935년 3월 9일 경성역에 도착했다. 조선 음악계가 총출동, 명월관에서 그의 환영식을 열었고, 고향을 찾았을 때는 은사인 조만식(曺晩植) 선생을 비롯 수백여명이 평양역에 나와 환영했다.(1935년 3월 6·10·14·20일자)

귀국 초연(初演) 무대에도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고, 그의 음악 세계는 '계정식씨 인상기' '계정식씨 독주회 전기(前記)' 같은 시리즈물로 조명됐다.(3월 14~17일, 5월 7~9일자) 귀국 무대에선 비올라 독주가 조선에 첫선을 보이고 조선 아악이 바이올린으로 연주됐다. 이어 전국 순회공연에 나서 '우리 악계의 향상을 위하야 비상히 크고 깃분 수확'을 거뒀다.(5월 12일자 등)

전국에서 보여준 계정식에 대한 환호는, 당시 미국에서 맹활약하던 첼리스트 안익태(安益泰)와 함께, 음악으로 '식민지 조선'의 존재를 멀리 '구미제국(歐米諸國)'에까지 널리 알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