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계부채 증가, 노후 빈곤으로 이어진다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900조원을 넘어서면서 서민 가계의 불안이 우려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미 가계부채 증가율이 가계소득 증가율보다 높아진 상태에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연체율까지 높아지고 있어서 이제 가계(家計)들의 부채상환 능력은 한계에 와 있다.

이제까지는 가계부채의 증가가 주택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너무 많이 끌어 쓴 결과라고 낙관적인 해석을 해왔지만 지금은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소득도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가계부채의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은 근로계층의 현재 문제일 뿐 아니라 이들의 노후 및 사회 전체의 고령화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는 퇴직하거나 사망한다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가계의 책임으로 남는다. 따라서 개인들이 부채의 상환에 매달리다 보면 결국 노후빈곤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연금정책과 연금수급권의 보호가 필수적이다. 연금이 노후보장의 최고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고시된 근로자의 '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에서 공표된 법적 퇴직금 제도의 중간정산 요건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퇴직금의 연금화를 서둘러야 한다. 비록 중간정산 요건이 주택 구입이나 개인적 요양, 부채 탕감 등에만 허용될 예정이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도 퇴직금이 노후자금화한다는 보장이 없다. 퇴직금의 연금화에 따른 개인들의 부족한 현재 자금 수요는 정부나 연금기관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시늉만 내고 있는 퇴직연금 제도가 실질적으로 노후안정에 기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가입자들이 선택한 연금 상품의 내용을 보면 일시금 수령에 대한 선택이 95% 수준에 달해서 퇴직 후 자녀의 결혼이나 창업 등을 위한 목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저소득 근로자들이 많이 속한 중소기업의 가입률도 매우 저조하다. 따라서 장기 혹은 종신형 연금수급의 정착이 필요하다. 특히 종신연금은 예상보다 빠른 평균수명의 연장에 대비하기 위하여도 중요하다. 앞으로 거의 모든 고령자는 100세까지 살게 될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 소멸한 상태에서 은퇴기간이 평균수명의 연장과 함께 늘어나는 것은 당사자에게 재앙과 같을 수 있다. 이 부담은 모두 사회가 안게 된다. 퇴직연금을 20년 이상의 장기 혹은 종신연금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구체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물론 평균수명의 연장은 생애기간 동안 물가에 연동해서 구매력까지 보장해 주는 국민연금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급여액이 근로 기간 평균소득의 25~30%에 불과할 것이고, 그나마 2060년대가 되면 고갈된다.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기금의 고갈 시점은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 또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나 고령자들은 연금액의 증액을 요구할 것이고, 복지제도의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는 필연적으로 연금기금도 끌어쓰게 할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는 바로 공적연금의 재정적자에 기인한 것이고, 위기의 일차적 해법으로 공적연금의 감액을 강요받고 있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끝없이 분출되고 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재정이 들어가야 할 부문은 생활능력이 없는 저소득 노인들에 대한 지원이다. 이는 생명과 인륜에 관련된 문제이고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령화가 본격적인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하면 현재 늘어나고 있는 다른 부문의 복지지출은 거의 다 축소시켜야 할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연금시스템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으면 지금 정치권에서 벌이고 있는 어떤 복지논쟁도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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