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효과 선점" 할인 경쟁… 소비자들 "싸긴 싸네"

15일은 한미 FTA 발효 첫날이었다. 아직 세관을 거쳐 매장에 도달한 상품은 없었지만, 'FTA 특수'를 노린 대형마트·백화점의 가격 인하 마케팅은 뜨거웠다. 매장마다 와인·주스·쇠고기·오렌지 등 미국산 대표 상품이 파격적으로 할인돼 팔리고 있었다. 모두 관세 인하 전 수입해 놓은 것이지만, 소비자들에게 FTA 효과를 확실히 알려 이후 미국산 상품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실제 아침부터 백화점·마트에는 할인된 '미국산'을 사려고 사람들이 몰렸고, 할인율을 묻는 전화도 빗발쳤다.

'한미 FTA 효과'가 절실한 것은 대형마트이다. 15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대형마트의 총 매출은 지난해보다 6.4% 떨어져 최근 1년간 하락 폭이 가장 컸다. 마트들은 관세가 내리는 미국산 제품을 직수입해 소비자가격을 대폭 인하해 매출 증대로 연결한다는 전략. 이마트는 15일부터 일주일간 웰치스 포도주스 가격을 20% 내린 6100원에, 밀러제뉴인(355㎖) 6개들이 한 묶음은 45% 인하해 7770원에 판다. 15일 하루에만 밀러제뉴인 판매는 4배 늘었고, 고객 손길이 뜸했던 미국 와인도 평소보다 2~3배 정도 더 팔렸다. 5월부터 수입되는 체리는 당장 24% 관세가 사라진다.

롯데마트도 미국산 갈비살과 부채살 가격을 30~40% 내렸다. 15일 롯데마트의 할인 행사 품목 매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25%, 미국산 쇠고기 50%, 미국산 와인은 30%가 평소보다 더 많이 팔렸다. 매장을 찾은 김선영(33)씨는 "할인 폭이 워낙 크다보니 일찍 품절될까봐 아침 일찍 마트에 와서 쇠고기와 와인을 샀다"고 했다. 마트 측은 관세가 즉시 철폐되는 견과류와 과일주스도 가격을 내릴 계획이다. 롯데백화점도 'FTA 발효 기념 미국 와인 초특가 할인 판매'를 내걸고 40~50종을 25%~50% 싸게 팔기 시작했다. 오렌지도 10% 할인 행사에 들어갔다.

미국차 업체에도 소비자 문의가 이어졌다. 세단과 지프를 파는 크라이슬러 매장에는 이날 평소보다 20% 많은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송재성 크라이슬러코리아 상무는 "이전까지 미국차를 '쇼핑 리스트'에 넣지 않았던 고객들이 할인율이 얼마인지 물어왔다"며 소비 증가를 예상했다. 크라이슬러는 올 1월부터 수입관세와 개별소비세 인하분을 할인한 가격에 신차를 판매, 지난해보다 판매 대수가 2.4배 늘었다. 최대 525만원을 할인하겠다고 발표한 포드 자동차는 미국산 외에도 캐나다·멕시코산 차량까지 관세 인하에 준하는 할인을 실시 중이다.

의류·가방·신발 등도 15일부터 관세 8~13%가 즉시 사라진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미국 브랜드 제품은 대부분 중국·인도에서 제조한 것이라 가격이 내릴 가능성은 별로 없다. 15일 백화점이 'FTA 할인 행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음에도 의류·가방 코너는 비교적 한산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미국에서 제조되는 40만~50만원대 일부 프리미엄 청바지를 제외하고 관세 혜택을 볼 수 있는 제품은 없다"고 했다.

색조 화장품 역시 3년 안에 관세 8%가 단계적으로 사라지지만, 바비브라운 등 미국산 화장품 수입 업체들은 "본사에서 라이드라인을 주기 전까지는 가격을 내릴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한·EU FTA가 발효된 이후, 관세 인하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배짱 장사'를 해오던 유럽산 가전 업체도 일부 제품 가격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미 FTA 특수에 자사 브랜드가 밀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15일 필립스전자는 유럽산 면도기 7종 가격을 3~5% 인하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