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가난한 국가에서 봉사하려 40대에 간호사 된 수사님

박준영(43)씨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작은 광고 회사에 다니다 서른넷에 훌쩍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수사(천주교의 남자 수도승)가 됐다. "서른을 넘기고 나니 문득 죽고 나서 신(神)이 '넌 세상에서 뭐 하다 왔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어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 수사가 됐죠." 그 뒤 그는 마흔 살에 간호대학에 입학, 올해 간호사가 됐다. "수사가 되고 나니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익혀 가난한 사람들의 상처를 직접 보듬겠다고 다짐했죠."

지난달 10일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을 졸업한 박 수사는 2008년 1년간 파견을 다녀온 필리핀 세부에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 왔다. "한국에서 온 의료진과 함께 산속에 있는 마을에 갔어요. 비에 도로가 망가져 지프차를 타고서도 한나절이 걸리는 곳이었죠. 20대 환자가 왔는데, 발목에 주먹만한 종기가 나서 발이 썩기 직전이었어요. 왜 아픈지도 모르고 참기만 했대요. 돈이 없으니 병원 갈 엄두를 못 낸 거죠. 거리의 아이들은 주린 배를 붙잡고 맨발로 다니고…. 이 사람들을 도와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1년 뒤 귀국하자마자 간호대학에 입학했다. 마흔살의 수사는 갓 스무살을 넘긴 친구들과 동급생이 됐다. 고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흘러 화학·생물 과목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라는 옛말이 실감 났다고 했다.

"입학생 300명 중에 남자가 스무 명 정도였는데 나이는 전교에서 제가 제일 많았어요. 학교에 다녀도 수도원에서 맡은 소임을 소홀히 할 수 없었죠. 1학년 때는 새벽 2시 전에 자본 적이 없어요."

대학에 다니는 3년간 매일 오전 5시가 조금 넘으면 잠에서 깨 수도원에서 맡은 일을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2·3학년 때는 병원 실습을 나가느라 밤 10시가 넘어서야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강의를 녹음해 새벽까지 서너 번을 돌려 듣고, 모르는 내용은 친구나 교수님께 물어봤다. 학교에 다니는 틈틈이 한센병 시설, 소년원, 양로원 등을 찾아 의료봉사를 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달 초 간호사 시험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박 수사는 이달부터 4년제 간호학사를 받기 위해 중앙대 간호학과에서 수업을 받는다. 올 9월에는 전남 장성에 있는 수도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우선 노환(老患)으로 고통받는 수도사들과 지역 주민들을 돌보고 싶어요. 앞으로 제3세계와 북한을 찾아 의료 봉사를 하는 게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