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햄릿의 우유부단 "법 때문이야"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안경환 지음｜서울대출판문화원｜383쪽｜1만8000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비운의 왕자 햄릿의 절규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인용되지만,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생각보다 적다. 눈앞에 유령으로 나타난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죽인 동생, 즉 햄릿의 숙부에 대한 복수를 주문받고 고뇌하는 장면에서다.

20년 넘게 영미법을 가르쳐온 안경환<사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이런 해석을 붙인다. "이 독백은 자살이 아니라 복수를 위한 고민이 아닐까. 그렇다면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충동적인 복수, 원시적인 보복 감정을 절제하기 위한 노력으로 오히려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의 복수심은 시종일관 견고했고, 살인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치밀한 법률가적 준비를 했다. 그 점에서 햄릿은 원시적인 사적(私的) 복수에서 법의 지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개인적 고통과 불확실한 결과를 그린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대표작 12편을 법률가의 시선으로 해부했다. "영미법 연구자로서 셰익스피어 전 작품의 법률주석서를 쓰는 작업을 오래 해왔다. 그 중 일부를 먼저 대중서로 낸 것"이라고 했다.

그의 눈에 '햄릿'은 살인죄에 관한 종합 교과서다. 주요 인물이 자연사한 경우는 없다. 선왕 햄릿은 신왕 클라우디스에게 독살당하고, 클라우디스는 선왕의 아들 햄릿의 칼에 죽는다.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는 물에 빠져 죽고, 햄릿의 모친 거트루드도 독배를 들고 쓰러진다. "이 작품에는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살인죄 법리가 정교하게 스며 있다. 법리의 상당 부분은 지금 우리 법에도 맞아떨어진다. 계획적으로 죽였느냐 일시적 흥분으로 죽였느냐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다르다. 죽은 사람의 신분에 따라 존속살인·대역살인 등으로 등급도 달라진다."

빚을 못 갚으면 살을 뜨기로 한 기상천외의 계약, '인육(人肉) 재판'으로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천대받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편견 어린 박해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투사였다. 반면 포셔의 판결은 편견에 찬 자의적인 것…."

 

'헨리 6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맨 먼저 법률가 놈을 모두 때려죽이자!" 시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치하 영국은 소송 폭주 시대. 연평균 100만건 이상의 소송에 400만명이 관련됐다.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재판은 공동체의 정의와 윤리적 일체감을 확인하는 주요 의식이자 시민의 여흥이었다. 당시 런던은 법률가의 도시였다. 우리 사법연수원에 해당하는 법학원에 기숙하는 예비법조인들은 셰익스피어극에 열광했다. 당대 극작가의 20%가 법학원 출신이었다. 셰익스피어도 법조타운 주변을 얼쩡댄 문학청년이었을 것이란 추정까지 있다.

지금도 셰익스피어는 서구 사회에서 세속 경전의 자리를 차지한다. 1993년 한 논문의 집계만 봐도 그해 미 법원 판결문에 셰익스피어가 인용된 예는 800여건이 넘는다.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들도 그의 작품을 인용하며 법리 공방을 벌인다.

안 교수는 "위대한 문학 작품에는 예외 없이 법이 들어 있다"고 했다. 법도 문학도 밑바탕에 있어서는 삶의 갈등을 다루기 때문. "전업작가 제도가 자리 잡기 전에 글쟁이들의 전형적인 밥벌이가 법률가였어요. 프랑스·독일 문학의 거장 상당수가 청년 시절 법률가 수업을 받았고 미국도 독립 직후 작가는 거의 모두 법률가였지요. 마크 트웨인도 법학박사였어요." 안 교수는 "시적 상상력이 법의 경직성을 극복할 때 비로소 온전한 정의가 선다"며 "궁극적으로 판사와 시인이 한 몸이 되는 사회라야만 균형 잡힌 정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