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19 03:10

덩치 커진 금융지주사들, 시너지 효과 노려 속속 도입
"지주 회장에게 권력 집중" 계열사 반발로 마찰 빚기도

금융가에 '매트릭스 조직'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4대 금융지주회사가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는 공룡 조직이 되면서 효율적인 조직 통제를 위해 매트릭스 조직을 속속 도입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2008년 하나금융이 처음으로 이 조직을 도입한 데 이어 신한금융이 올 초에 부분적으로 도입했고, 우리금융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속한 씨티그룹은 일찍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매트릭스 조직이란 계열사 단위의 수직적인 보고 및 의사 결정 체계와 별도로 개인·기업금융, 자산 관리 등 각 계열사 공통 분야의 횡적 보고 라인을 별도로 두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은행·보험·증권사의 개인금융 책임자가 자사 CEO뿐만 아니라 그룹의 개인금융 책임자에게도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자회사인 은행 등에선 '옥상옥(屋上屋)' 조직이라며 도입에 반대하는 기류가 있어, 조직 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금융지주사 회장은 "매트릭스란 재벌의 기조실이나 구조본 같은 조직"이라면서 "이를 통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리스크 관리도 이중으로 해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매트릭스 조직, 외환은행 장악의 비밀 무기"

하나금융은 지난달 17일 외환은행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외환은행에 5년간 독립 경영과 독립적 인사를 보장해 줬다. 당시 금융계 안팎에선 "5년간 투 뱅크(two bank) 체제로 운영하려면 뭐하게 외환은행을 인수했느냐"는 비판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금융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금융계 고위 인사는 "김승유 회장이 어떤 사람인데, 하나와 외환을 따로 놀게 해 놓고 은퇴하겠느냐. 매트릭스 조직을 통해 외환은행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현재 하나금융의 개인금융 부문장은 하나은행장이, 기업금융 부문장은 외환은행장이, 자산 관리 부문장은 하나대투증권 사장이 각각 맡고 있다. 이 부문장들이 각 계열사(은행·증권·보험·카드) 관련 부문 사업 의사 결정과 실적 평가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따로 놀 것이라는 우려는 단견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해 하나금융 관계자는 "매트릭스 체제라고 해도 노조와 합의 때 외환은행의 인사권에는 관여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에 5년간 외환은행의 경영 자율권은 보장된다"고 해명했다.

매트릭스 도입을 둘러싼 갈등

매트릭스 체제는 국제적 금융사에서는 흔한 조직 구조다. 베인앤컴퍼니가 2011년 세계 100대 금융 그룹을 조사해 보니 중국계를 뺀 91개 금융 그룹 중 77곳이 매트릭스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걸음마 단계다.

우리금융은 매트릭스 체제 도입을 목표로 1년 전부터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도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쪽은 최근 5년간 대형 투자 실패로 10조원 손실을 입었는데, 매트릭스 조직을 통해 이중(二重) 견제 장치를 구축하면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우리은행을 비롯한 계열사 경영진과 노조는 "지주 회장으로 권력이 집중된다"며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국책 연구원 박사는 "우리 금융계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사실 지주 회장 리스크다. 위에서 찍어 내려오는 의사 결정과 대출이 금융사 부실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고 말해 매트릭스 조직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금융가에선 매트릭스 논란에서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의 해묵은 갈등을 떠올린다. 2000년대 초반 우리금융의 1기 수뇌부인 윤병철 우리금융 회장과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당시 IT 기능 통합, 계열사 예산 배정 사전 협의 및 조정권 도입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경쟁력 강화다"(우리금융) "아니다. 조직을 장악하려는 것이다"(우리은행)는 양측 논리도 과거와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이런 논란 때문에 다른 금융지주들은 매트릭스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거나(KB금융), 부분적으로만 도입(신한금융)했다. 신한금융은 예산·인사권은 부문장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직 충성도는 높지만 조직 간 수평적 교류는 힘겨워하는 한국 특유의 조직 문화도 매트릭스 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매트릭스(matrix) 조직

한 조직 안에서 혼합 또는 중첩된 보고 체계를 말한다. 숫자를 가로(행)와 세로(열)로 나열한 수학 용어 '행렬(matrix)'에서 이름을 따왔다. 금융지주 회사로 치면 계열사인 은행·증권사·보험사 CEO를 중심으로 한 세로 방향 보고 체계가 있는 상태에서, 그룹 전체의 프라이빗뱅킹(PB)이나 투자금융(IB) 사업 부문을 책임지는 부문장을 중심으로 한 가로 방향 보고 체계를 별도로 두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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