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22] 폭발적 베스트셀러 '사랑의 불꽃'

"어느 때 나는 경부선 차중에서 한 놀나운 현상을 보게 되엿다. …백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일제히 버들 '빠스켓' 속에서 연분홍색의 책을 한권씩 꺼내들고 읽기 시작하얏다. …그것은 각각 제명(題名)은 다를망정 거의 다 노자영군의 작품이었던 것… 시내에 잇는 남여 학생중에 옥편은 한권 업슬망정 노자영군의 작품 한권식은 거의 다 잇다.…"(1926년 8월 12일자)

1926년 8월 조선일보 학예면에 연재된 김을한(金乙漢)의 '인생잡기' 속의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 춘성(春城) 노자영(盧子泳)의 인기에 대한 설명이다.

기자생활을 접고 전업작가로 나선 춘성의 작품들은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특히 연애 편지집인 '사랑의 불꽃'은 하루 평균 30~40부가 팔려 '서적시장 판매 최고기록'을 세울 때였다.

그러나 춘성의 작품에 문단은 '저급' 딱지를 붙였다. 시(詩) '진주의 별'을 읽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는, '살살 묵(墨)으로 눈섭을 지우고 차닥차닥 분으로 얼굴을 덥고, 그리고 입슐엔 연지를 칠하얏다'며, '충고하노니 이러한 몃 푼짜리 못 되는 미문으로만 시를 써서는 아니된다'고 충고했다.(개벽 1923년 1월 1일자)

나아가 김을한은 춘성의 작품들을 학생들이 읽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그는 '세상에서 미문가라 부르는' 노의 '걸작'을 읽느라 이틀이나 '허비'해보니, '춘기(春期) 발동기에 잇는 소년소녀가 보면 반드시 엇더한 충동에 견듸지 못할만한 춘화도(春畵圖) 이상의 대걸작'이라고 혹평하고(1926년 8월 9일자), '근자 남녀학생간의 풍기문제는 그 간접적 책임이 노자영에게 있다'며, '나이 어린 사람에게 그의 작품을 읽히는 것은, 마치 광인에게 폭탄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8월 12일자)

며칠 뒤 노자영은, 김의 글은 작품의 가치를 비평하기 위함이 아니요, 욕쓰고 동물적 쾌감을 만족시키려는 '횡설수설'이라며 3회의 반론을 폈다.(8월 18~20일자)

그러자 평론가 조중곤(趙重滾)이 가세했다. 그는 최근작 '반항'을 읽어보니 일본 주천(廚川)의 '근대의 연애관'을 표절한 것이라며, "아모리 권위 업는 조선이기로 이따위 모작(模作)을 일삼는 군소배가 질알을 치며 대가리 짓을 한다는 것은 너무 어이 엄는 일"이라며, '의지가 박약한 소년소녀의 코 무든 돈을 글거' 먹는 모기 같은 '문사(蚊士)'라고 공격했다.(8월 22~26일자) 그럼에도 춘성의 미문(美文)은 오랫동안 청춘남녀의 '연애편지' 속에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