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세, 나는 지금도 바느질한다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 명지산, 국망봉이 두루 몰려 있는 가평군은 전체 땅의 80%가 산지다. 104세 장아지 할머니가 사는 가평군 상면 임초1리 역시 산자락에 위치한 동네다. 대여섯 가구가 드문드문 사는 조용한 마을은 눈 닿는 곳마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 아스팔트 길이 시작되는 양옥집에서 장 할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산다. 장남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 터에서 90년간 살았고, 스무 살에 시집 온 며느리(김묘훈)는 어느덧 칠순이 되었다.

◇장수의 정석

반백의 머리를 은비녀로 쪽을 찐 장아지 할머니는 올해로 104세를 맞았다. 가는귀가 먹어서 며느리의 입을 보고서야 말을 알아듣는 것을 빼면,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가볍다. 게다가 바느질하는 손은 여전히 야무지고 날래다. 기억력이 좋아서 지금도 옛이야기를 할 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말씀하신다.

"우리 어머님은 아침에 여섯 시 반쯤 일어나셔서 세수하시고, 정갈하게 머리 안 빗고는 절대 식사 안 하세요. 아침을 7시, 점심을 12시, 저녁을 5시 반에 드시는 것을 어기지 않으세요. 그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주방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니까 제가 얼른 차려다 드리지요. 조금씩 잡수니까 금방 시장하시지. 과식은 안 하고, 조금씩 자주 드세요. 젊어서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약하셨어요. 된장국, 채소만 드시고 고기라고는 조기랑 북어만 드셨는데, 남들이 (고기) 먹으면 코를 막으시고 스스로 안 잡숫더라고. 요즘은 고깃국도 드시고 빵도 좀 드시고 해요. 몇 년 전에 한번 넘어지셔서 다리를 수술했는데, 평생 약을 안 드셨던 분이라 그런지 약이 아주 잘 들어서 금방 뼈가 붙으셨어요. 지금도 지팡이 짚고 동네를 잘롬잘롬 잘 다니세요."

며느리는 자신이 만든 식혜를 시어머님이 시원하게 들이켜는 동안, 오십 년간 보아온 '시어머님 장수 비법'을 설명했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세 살 아이가 엄마를 찾듯' 자신을 의지하지만, 항상 심기를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며느리의 마음이다.

"우리 어머님이 손끝이 야무지셨는데, 나도 덤벙덤벙하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서로 잘 맞았지요." 지난 2월, 며느리와 아들은 가평문화원에서 수여하는 효자효부상을 받았다

◇참말로 고생하고 산 얘기

"예전에 고생하며 산 걸 뭐하러 얘기해?" 100년의 시간 속에 혹시 건강 비법이 숨어있을까 여쭸더니, 장 할머니는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나 곧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흑백영화 같은 추억들을 감자줄기처럼 와르르 쏟아내었다.

"우리 집이 사남매 중에 딸이 나 하나였어. 어려서 우리 친정어머니가 나보고 원숭이 새끼 같다고 했지. 남하는 것 보면 그대로 따라 했으니까. 일곱 살 때 내가 '엄마, 이 팥 내가 삶을까?'하니, 엄마가 '네깟 게 무슨 이 팥을 삶니?'해. 내가 돌멩이를 요렇게 일어서 깨끗이 씻어서 솥에다 끓였지. 끓여놨더니 저녁할 때 쉽잖아. 친정어머니가 '아휴… 내가 좋기는 하다만, 아휴…' 혼자 중얼거려. 일곱 살 먹은 게 뭘 이렇게 하냐는 말이야. 그때 우리 큰 올케가 여덟 살이었어. 나는 일곱 살이고. 나는 일을 잘해서 벌써 다 끝내면, 올케는 반도 못 해. 나는 다 했는데, 왜 이렇게 늦냐고 꼬집고 싸우고… 하하하…."

열세 살, 장 할머니는 이웃 동네 황씨 집안 셋째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올해로 사별한지 36년이 된 남편은 좋았던 일보다 서운했던 일이 먼저 떠오른다. 첫 아들이 젖먹이일 때였다. 잠깐 된장 푸러 가면서 남편에게 아들을 맡겼는데, 그 아들이 안방의 화로를 건드려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화상은 쉬이 낫지 않아 그 후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그래도 남편한테 원망 한번 못 하고 속으로 삭여야 했다. 약주를 좋아했고, 고집이 세어 남 말을 잘 듣지 않았던 남편이지만, 광목이 생기면 신랑의 잠방이부터 만들게 되더라며 할머니는 수줍게 회상했다.

궁벽한 산골 살림과 매서운 시집살이 속에서도 장 할머니는 남다른 자부심이 하나 있었다. 옷 만드는 솜씨였다.

"내가 시집오니까 맏동서가 통바지를 입고 있어. '형님 이게 (천이) 덜 들어요?' 하니까, '아니 몰라. 남들이 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해. '얼마 들어요?' 물으니까 '광목 대자 들었어' 하는 거야. 내가 '아, 대자면 (윗옷까지) 다 하는데요' 하니까, 해 보래. 그래서 쩍쩍 말라서(마름질해서) 다림질해서 만드니 똑 되지 뭐요. 그다음부터 맏동서님이 넘보지(무시하지) 않더라고…."

한번 본 옷은 쓱쓱 마름질해서 그대로 만들어내던 솜씨였지만, 어느 날 바늘이 오른손 검지를 깊숙이 파고들어 생인손을 앓았다. 밤마다 앓는 아내를 보다 못해 남편이 달팽이를 찧어 붙여줬지만 생살이 썩어나갈 뿐 낫지 않았다. 결국, 손가락 한 마디가 없어지고서야 상처는 아물었고 할머니는 없어진 손마디만큼 골무를 만들어 끼었다. "그래도 이 손가락으로 못 하는 게 없어. 내가 조카들 장가갈 때 두루마기도 다 지어주었지." 요즘도 할머니는 터진 솔기나 양말은 직접 꿰맨다. 아직 녹슬지 않은 바느질 솜씨에 할머니는 흡족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