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신장, 이번엔 간 기증한 재미교포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한 지 12년 만에 또다시 간을 기증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은 재미교포가 있다. 미국 워싱턴에 사는 문성환(56)씨는 19일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이틀 뒤 받을 수술을 위한 검사를 받았다. "(장기 기증을) 한 번 해봐서 검사 과정은 익숙합니다. 간 이식을 받으시는 분도 투병하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행복하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씨 같은 사례는 희귀하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생존해 있으면서 장기를 순차적으로 2개 기증한 사례는 국내에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른 살 때 미국으로 떠난 그는 2000년에 처음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만성신부전증 환자가 나오는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폐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자신의 젊은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폐결핵을 앓았어요. 살도 자꾸 빠지고 합병증까지 겹쳐서 다들 '죽겠구나' 했어요. 수술이나 받고 죽자 싶어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는데, 건강을 회복해 사람 구실을 하게 됐어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다른 사람을 돕자고 마음먹었어요."

2000년 장기 기증을 결심하고 난 뒤 아내에게는 "가족을 만나고 오겠다"며 한국으로 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았다. 그는 신장과 간을 동시에 기증하고 싶어했지만 장기 기증 규정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조금 기다리니 자신의 신장과 잘 맞는 환자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가족 반대가 심했어요. 예순 된 어머니는 '죽다 살아나 미국에 가더니, 몇 년 만에 돌아와 한다는 소리가 남한테 장기를 떼준다는 것이냐'며 몇날 며칠을 우셨어요. 수술도 한 번 미뤄질 정도로 반대하셨어요."

문씨는 "다른 사람 생명을 살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이냐"며 설득했고, 어머니는 결국 마음을 돌렸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미국으로 간 문씨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다. "그때 낳은 딸이 열두 살 됐어요. 나이가 들어 기증 못 하게 될 수 있으니, 더 늦기 전에 다른 장기도 기증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작년 12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문을 한 번 더 두드렸다. 검사를 해보니, 43세 간경화 환자에게 간을 기증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문씨는 장기 기증을 위해 생업을 접고 한국으로 왔다. 장기를 기증하는 수술을 받고 나면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6개월간 일을 할 수 없다.

"미국 생활이 녹록지 않아 지금은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일해요. 돈이야 잠깐 쉬고 다시 벌면 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