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선, 과시용으로 명품 사는 비율이 좀 높아요"

―그러나 아시아 시장에선 에르메스가 지향한다는 가치가 중요시되기보다는 에르메스가 지위와 신분을 상징하는 징표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인정한다. 어느 시장이든 과시용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브랜드의 특별한 가치를 알고 사는 사람도 있다. 아시아 시장에선 과시용으로 사는 비율이 많은 것 같다."

―명품 브랜드는 매장조차 일반인이 쉽게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도도한 신비주의 이미지'를 고수한다. 그런데 대중에게 제품 제작 과정을 공개하는 이유는.

"에르메스 전체 직원 8000여명 중 장인이 3000명 이상이다. 장인 한 명이 170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 기술 그대로 한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 장인 여럿이 분담해 대량생산식으로 제품을 만드는 여타의 명품 브랜드와는 다르다. 차별화된 가치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인들은 어떤 연령과 배경을 지닌 인물인가.

"중동 출신의 청각 장애 보석 장인도 있고, 성악을 하다 목에 문제가 생겨 가죽 장인이 된 사람도 있다.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 같다."

―결국 '장인'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닌가.

"크게 마케팅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에르메스가 금기(禁忌)로 여기는 단어다. 그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을 쓴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제품'과 '장인'이 있는 거다."

―한국의 패션을 평가한다면.

"한국은 모던한(현대적인) 가치에서 최상위에 있는 국가다. 한국 브랜드들이 고유한 장인 정신을 이어나간다면 20년 후쯤이면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거다."

프랑스 패션브랜드 에르메스는 한국 여성들에게 명품의 대명사로 인식돼 있다. 대표 제품인 '버킨 백'은 1000만원이 넘지만 주문 대기자가 많아 2년 기다려야 겨우 살 수 있다.

서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에르메스가 일반인에게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한다. 2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열리는 '에르메스, 장인들의 축제―페스티발 데 메티에(Festival Des Metiers)'를 통해서다. 대중 앞에서 가죽·실크스카프·타이·말안장 등 8개 제품군의 에르메스 장인(匠人) 9명이 나흘에 걸쳐 핸드백·시계 등 대표 제품을 만든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플로리앙 크렌(Craen·42) 에르메스 북아시아 지역 사장을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만났다. 그는 상하이 지사에 상주하며 한국·중국·대만·홍콩·마카오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작년 에르메스의 전체 매출 28억유로(약 4조1726억원) 중 약 20%가 이 지역에서 이뤄졌다. 크렌 사장과 명품에 대한 불편한 진실과 편견을 가감 없이 얘기했다.

―한국에선 수천만원까지 나가는 명품 제품들의 고가(高價) 정책이 과소비와 사치 논란을 낳기도 했다.

"고가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은 아니다. 생산 비용에 대한 필연적 결과다. 유명 레스토랑에 가서 비싼 요리를 먹는다 쳐보자. 그 음식이 요리사 25명이 매달려 정성스레 만든 음식이라면 그 가격이 합당하다고 느낄 거다. 같은 맥락이다. 제품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손이 가는지 눈앞에서 본다면 고가를 이해할 거다."

―지난해 7월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직후 가격을 평균 5.6% 내린 지 반년 만에 켈리 백 등 대표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을 반영한 정기적인 가격조정이다. 인상해도 FTA 이전보다는 가격이 싸다."

―에르메스는 한국에서 선망 대상인 동시에 질타 대상이다. 현 대통령 부인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켈리백을 들었다가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한국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그렇다. '럭셔리' '셀러브리티(유명인)' '부의 상징' 등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다. 제품의 질, 우아함, 티 나지 않는 은은함, 기능성이 우리의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