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변한다] [9] 아름답지만 견고하다, 에너지를 껴안았다

'친환경 주택'하면 갖게 되는 편견 세 가지. '(건물이) 못생겼다, 돈이 많이 든다, 이해하기 어렵다'. 친환경 주택 중 하나인 '에너지 절감형 주택'도 오랫동안 그런 고정관념과 싸워왔다. '빠져나가는 열을 최대한 막기 위한 네모 상자 형태의, 건축비가 비싼, 무색무취한 건물'.

건축가 윤태권(43·엔진포스건축 소장)씨가 지난해 경기도 양평에 설계한 단독주택은 이런 편견을 정면으로 깬 집이다. 그가 세운 목표는 '친환경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생활비가 싼 집'이었다. 모험을 추동한 건 건축주 양현수(53)씨였다. 윤씨는 "가급적 큰 공간에 살고 싶다. 대신에 비용은 아주 적게 들이겠다"는 건축주의 뜻을 반영해 친환경 에너지 절감 주택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를 지었다.

최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주택에서 만난 윤씨는 "'패시브 하우스'는 촘촘한 단열을 통해 외부로 열이 새는 것을 막아 늘 따스한 온도와 쾌적한 공기를 유지하는 '수동적 에너지 주택'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어떻게 하면 냉·난방비를 최대한 적게 쓰면서 넓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집"이라고 했다. '패시브 하우스'의 상대 개념으로 '액티브 하우스'가 있다. 같은 친환경 주택이지만 태양열 주택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쓴다는 점에서 '패시브 하우스'와 대비된다.

윤씨는 양평 주택 설계로 지난해 국토해양부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지난 1월 이곳에 이사 온 건축주 양씨는 아내 정경선(49·대학교수)씨, 대학생 아들 근호(22)씨 등 가족과 함께 살 교외 공간을 꿈꾸다 이런 집을 떠올렸다고 한다. "20년 내내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넓은 주택에 대한 꿈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넓은 전원주택에서 지출되는 냉·난방비가 엄청나더군요." 그래서 찾은 답이 '열을 최대한 지키면서 쾌적한 공기를 유지하는 기능적인 주택'이었다.

양평 패시브 하우스는 외관부터가 '사방이 막힌 단순한 형태'의 일반적 패시브 건축물과 거리가 멀다. '나와 아내, 아들 방이 독립적으로 구분돼 있으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건축가는 "스튜디오, 생활공간, 거실 겸 식사 공간으로 사각형 건물 3개 동을 따로 만든 뒤 그 모서리를 자연스럽게 포개 분리와 통합을 실현했다"고 했다. 응접실·침실·AV룸 등 방마다 천장 높이(2.4~5m)와 모양을 달리한 것도 특징.

건축가는 외관에 파격을 준 대신 '속살의 견고함'으로 에너지 절감을 이뤄냈다. 우선 기본적인 내단열(실내 쪽 콘크리트에 단열재를 두르는 것)과 함께 외단열도 시공해 열전도율을 낮췄고, 단열 두께도 국내 법적 기준(85㎜)의 3배인 240㎜에 맞췄다. 열전도율이 낮은 PVC 소재의 3중 창과 징크(열을 오래 머금는 성질이 있는 아연 철판) 지붕, 타일 바닥을 써 열이 최대한 집 안에 오래 머물도록 했다.

견고한 단열 때문에 자칫 실내 공기가 순환되지 못해 일으킬 수 있는 문제는 '열 회수 환기 장치'와 '쿨 튜브'를 통해 해결했다. 건축가 윤씨는 "보일러실에 설치한 '열 회수 환기 장치'는 온도는 유지하면서 나쁜 공기만 빼내는 특수 장치이고, 땅에 묻은 '쿨 튜브'는 외부 공기를 흡입해 지열(地熱)로 데우거나 냉각해 집 안으로 보내주는 기능을 한다"고 했다. 방마다 달린 길이 10㎝짜리 환기구도 쾌적한 공기 순환을 돕는다.

건물 연면적 360㎡(약 120평)에 든 공사비는 평당 약 750만원. 입지·규모가 비슷한 일반 주택 건축 비용의 1.3배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윤씨는 "철저한 단열로 필요 석유량을 줄였기 때문에 냉·난방비가 일반 주택의 8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초과한 건축비를 회수하는 데는 7년 남짓 걸린다는 분석. 건축주 부부는 "한겨울에 이 넓은 집을 난방하는 데 도시가스 기준 월 약 7만~8만원밖에 들지 않는다"며 "지난겨울 혹한(酷寒)에도 난방은 하루에 한 번 1시간 정도만 했다"고 했다.

양현수씨 부부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으로 출발한 집이 결과적으로 지구를 지키게 됐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