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상품 설계… 큰 손들 사모펀드에 몰린다

"원하는 스펙(Spec·조건)만 말씀해 주세요. 뭐든지 만들어 드립니다."(A증권사 지점장)

큰 손들의 재테크시장에서 '주문 제작형' 사모(私募) 금융상품이 확산되고 있다. 사모 금융상품이란 5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상품을 말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금을 공개 모집하는 공모(公募) 상품에 대비되는 상품이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사모형 투자상품은 거액 자산가들이 마치 '맞춤 양복'처럼 "이런 이런 형태의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하면 금융회사들이 거기에 맞춰 상품을 생산해내는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투자 대상이나 상품구조에 별다른 제약이 없고, 맞춤식 설계가 가능하다 보니 사모 상품에만 투자하는 마니아층까지 등장하고 있다.

일부 투자상품 중엔 사모 상품 판매 실적이 공모 상품을 역전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모 주가연계증권(ELS)은 지난달에만 2조7800억원 넘게 팔려 공모 ELS보다 50% 많았다. 김성태 신한금융투자 투자상품부장은 "사모 상품은 개인별 투자 성향을 고려해 만들기 때문에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맞춤형 상품, 사흘 만에 초고속 출시

최근 부자들이 선호하는 사모 상품은 확실한 주특기를 갖춘 경우가 많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주주(株主) 행동주의'를 통해 수익을 내는 유형의 사모 펀드를 내놨다.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중소기업에 투자한 다음 경영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계기로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방식의 펀드다. 일부 고객에게만 한정된 입소문 판매였지만 한 달 새 400억원의 자금이 들어와 일찌감치 판매가 마감됐다. 이용규 상품기획실장은 "공모 펀드로 실망한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상품은 먹히지 않는다"면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투자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게끔 만들어야 팔린다"고 말했다.

사모 형태로 투자하면 '선택과 집중'을 하기에도 유리하다. 예컨대 공모주에 투자하는 펀드는 현재 사모 형태가 단연 인기다. 뭉칫돈이 몰리면서 설정액이 작년 말 5200억원에서 이달 현재 6400억원으로 23% 늘어났다. 조재영 우리투자증권 부장은 "공모주 투자는 사모로 투자하면 '기관투자가'로 분류돼 기관에 배정하는 물량을 따로 받을 수 있다"며 "개인이 직접 공모주 청약을 하거나 공모 펀드에 가입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

사모 투자상품은 상품 개발부터 생산·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예컨대 주가 급등락에 베팅하는 주가연계증권은 투자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사모형 ELS는 주가 흐름에 빨리 올라탈 수 있다. 한상언 신한은행 투자상품부 팀장은 "공모형은 상품 출시까지 금감원 사전 신고와 승인 등에 3주 이상 걸리지만 사모형은 이런 절차가 생략되기 때문에 3일 만에 상품 출시가 가능하다"며 "2~3일 후 주가 전망을 토대로 사모 ELS에 투자하면 승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민층 소외시키는 상품' 비판도

사모 상품은 최소 가입액이 보통 1억원이기 때문에 일각에선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증권사 관계자는 "사모 상품은 법적으로 투자자 수가 49명 이하로 제한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모형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들은 "사모형 투자상품이라고 해서 공모 상품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고 해명한다. 또 사모 상품이 반드시 고수익을 보장하는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설정된 A운용사의 사모형 글로벌 펀드의 경우 19일 현재 수익률이 -96%(펀드 평가회사 제로인 자료)로 '깡통 펀드'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은경 제로인 펀드애널리스트는"사모 상품은 공모 상품보다 운용상 제약이 적어 '고위험 고수익형 상품'에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많지 않은 일반인들이 투자하는 건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