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가격 연일 폭락… 저가 매수 기회인가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안전한 도피처로 여겨졌던 채권의 인기가 시들고 있다. 한때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했던 미국·독일 등에선 금리가 급반등하며 채권값이 연일 폭락하고 있다. 채권은 금리가 올라가면 가격은 떨어진다. 채권 가격 폭락은 미국 경기 지표가 호전되고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나면서 '위험 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채권 투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금리가 하향세를 보일 것이란 중장기 금리전망을 믿는다면 지금이 채권 저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국채 금리 7개월 만에 최고치

작년 하반기 세계가 더블딥(이중경기침체) 우려에 휩싸이면서 우량 채권은 금과 함께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았다. 미국과 독일 10년물 국채는 연 2% 아래로 내려갔고, 독일 단기물은 한때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들 국가 10년물 금리도 2%대로 다시 올라섰다.

21일 국내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62%로 마감했다. 작년 말 이후 3.3%대를 횡보하던 3년물 금리는 2월부터 꿈틀거리더니 이달 들어서만 0.15%포인트 올랐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경기에 대한 판단을 긍정적으로 바꾼 이후엔 더 가파르게 올라 3.4%대에서 단숨에 3.6%대로 올라섰다. 이는 작년 8월 3일 주식 폭락장이 시작되기 직전(3.81%) 수준으로 7개월 만의 최고치다.

최근 국내 채권 금리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외국인이다. 21일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국채선물 순매도 누적금액은 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자금이 단기적인 금리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권,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

현재 채권 금리가 단기 급등세를 보이지만 세계 경제가 장기적으로 저성장 시대에 돌입하면 채권 금리는 하향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 전망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가 여기서 더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비용이 늘면서 경기가 크게 위축되기 때문에 미 연준이 저금리로 되돌릴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 연구원은 "한국 역시 고령화로 인한 저성장을 피하기 힘든 만큼 길게 보면 채권 금리가 내려갈 확률이 더 높다"고 말했다.

김지연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최근 급등세는 추세적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저가 매수 기회로 활용하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채권가격이 바닥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이학승 동양증권 연구원은 "작년 초 국고채 3년물이 4%대였고, 2008년 금융위기 전에는 4~6%대를 오간 만큼 역사적으로 3.6%대 금리는 크게 높은 수준은 아니다"라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믿음이 강해지면 더 오를 수도 있으니 기회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저평가 회사채, '고금리+시세차익' 두 마리 토끼 잡을 수도

회사채 금리도 전반적으로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부 저평가 기업들의 회사채는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가격이 오르는 추세(금리 하락)다. 김형호 채권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업황이 부진한 조선·건설·해운 업종 같은 채권이 저평가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중에 업황이 좋아질 가능성이 있고 자산이나 담보가 확실한 회사채에 투자하면 고금리 수익과 가격 차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와 은행이나 증권사가 인수한 저축은행 채권도 유망한 투자처라고 조언했다. 그는 "PF ABCP는 토지가 담보로 잡혀 있고 건설회사가 보증을 서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고, 저축은행 채권은 대주주(은행, 증권사)가 무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우량 회사채를 고금리에 받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