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푸념도 영화 소재… 난 그 속의 '소통' 찍는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은 윤성현 감독('파수꾼'), 소상민 감독('나는 곤경에 처했다') 등 유망한 신인 감독을 배출하기로 유명하다. 이 계보에 '가시'의 김중현(37) 감독 이름이 더해졌다. 그는 KAFA 장편제작연구과정으로 만든 데뷔작 '가시'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지난달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 홍콩영화제, 마이애미영화제 등으로부터 초청받았다. 전찬일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인물들의 사연엔 그들만의 것이라고 일축하기 힘든 보편성이 통하고, 신예 감독의 작품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원숙한 연출력 등이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영화 '가시'는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익숙한 이야기다. 윤호(엄태구)는 여자 친구(윤채영)와 결혼하고 싶지만 집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되고, 윤호의 어머니(길해연)에게 돈을 떼인 서희(박세진)는 윤호를 괴롭힌다.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는 젊은이나 빚 때문에 무너지는 가족은 더 이상 충격적인 영화 소재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흔하다.

지난주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만난 김 감독은 "영화 소재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며 "어머니가 들려준 집 나간 동네 아주머니 얘기나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푸념 같은 게 다 소재가 된다"고 했다. "어렸을 때 서울 모래네 산동네에서 살았던 경험도 여기에 한몫했다"고 한다. "요즘 사회 전반에서 불안과 초조함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전 가난이나 사회의 부조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국문과를 전공하던 김 감독은 군대를 다녀온 뒤 서울예대 영화과에 다시 들어가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연출부로 현장 경험을 했다. 그후 단편과 중편 영화를 찍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영화를 그만두고 대학에서 계약직으로 강의 촬영을 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그 무렵 지인의 권유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영화를 그만둘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곤 2010년 영화아카데미 시험을 보고 그해 최연장자(35세)로 합격했다. "등록금 200만원은 시집간 동생한테서 빌리고, 어머니한테는 어딘가 일자리를 구했다고 거짓말했어요. 나중에 어머니한테 손 벌릴 일이 생기자 결국 고백했지만요. 난리 났죠." 그랬던 어머니는 아들의 영화가 부산 영화제에서 상영되자 부산의 횟집에서 친척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단다.

데뷔작으로 이름을 꽤 알렸는데도 김 감독은 "나이는 먹었는데 안정적인 직장은 없다. '윤호'처럼 여자가 있어도 걱정이고, 없어도 걱정인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도 경제적인 면 때문에 영화를 그만두진 않을 거예요. 예전에는 불안했는데 이젠 아녜요. 그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뭔가를 갖고 있는 기분이에요."

김 감독은 "언젠가는 꼭 멜로영화도 만들겠다. 멜로도 결국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 아닌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