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 [23] 발성영화 상륙! 그런데 웬 영어?

"영화계의 최첨단에서 세계 대중의 눈과 귀를 놀래든 최신 필림식 발성 영화가 경성에 이르러 이십칠일부터 단성사에서 공개하게 되었다." 1930년 1월 27일 조선일보는 '순회극단'등 4편의 '말하는 활동사진'이 시내 극장에서 선보인다는 빅 뉴스를 알렸다. 물론 4편 모두 외국영화였다. 영화라면 무성영화만 떠올리던 시대에, '소리 나는 활동사진'이란 "일대 비약(飛躍)이고 일대 혁명적 진출"(1930년 1월 31일자)로 기대를 모았다. 신문은 두 편의 토키 영화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고 "서울의 흥행계는 이 발성영화로써 신긔록을 지으리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1930년 1월 28일자) 표정과 동작에만 치중하던 배우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대사 연기)연습을 계속"한다는(1931년 9월 8일자)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초창기 토키 영화에 대한 관객 반응은 흥분 섞인 기대만큼 뜨겁지는 않았던 듯하다. 모두 외국영화였기에 배우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나와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조선에 수입된 서양발성영화, 즉 토키는 말 때문에 큰 환영을 밧지 못하야 극장 측에서는 그리 조흔 영향을 밧지 못하엿고"(1930년 4월 16일자) "서울에 잠간 나타낫다가 성공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1930년 11월 28일자) 통계에 따르면 1931년 조선인구 2044만명 중 77%가 문맹(文盲)이었으니 자막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1935년 8월 '조선 최초의 토키 영화'인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이 어렵사리 제작돼 선보이자(1935년 8월 16일자) 반응은 외국영화 때와 달랐다. "관객의 쇄도와 아울러 흥행에 다대한 효과"를 나타냈으며 "조선 영화계에 큰 쇼크를 주었다."(1935년 10월 11일자) '춘향전'에 대해 안석영(安夕影)은 "제일 중요한 녹음이 실패"했고 따분한 음악을 삽입해 토키영화로서의 완성도를 갉아먹었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며(1935년 10월 13일자) 우리 고전에 서양 음악을 입힌 부분이 웃음을 사기도 했다.

열광과 실망이 교차하면서도 토키 영화는 시대의 대세가 되어 갔다. 조선일보 1937년 11월 5일자는 "영원히 토키는 제작하지 안는다"던 무성영화 시대의 거물 '촤리 촤프링(찰리 채플린)'이 "고집을 포기하고 단연 토키로 전향하엿다"고 전했다. "아모리 애를 써 보앗스나 토키를 제작하지 안코는 못 백이도록 현실이 강요하고 잇다"는 기사 속 '촤프링'의 말은 이 땅에도 맞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