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빈곤아동 도우며 사는 스타 광고쟁이

"제가 원래 불쌍한 사람 보고 울고 그런 성격이 아녜요. 좋게 말하면 쿨하고, 달리 말하면 차갑고…. 광고 일이 그렇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매일 아침 생각하죠. '오늘 만날 사람은 누굴까. 그 사람이 또 한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하자….'"

광고대행사 웰콤 전(前) 대표 문애란(59)씨.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미인은 잠꾸러기' 같은 카피를 쓴 그녀는 광고쟁이들의 꿈인 칸국제광고제에서 국내 최초로 은사자상(1988년)을 받았고, 여성 광고인으론 처음으로 국민훈장(동백장·2006년)도 받았다. 그녀는 요즘 서울 한남동의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 컴패션'으로 거의 매일 출근한다. 지금 직함은 그저 '자원봉사자'다.

문씨는 미국 유학 중이던 딸의 멘토 역할을 해준 한국 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와의 인연으로 2005년 처음 컴패션을 만났다.

처음 받은 부탁은 이 기관의 표어(Releasing children from poverty in Jesus's name)를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겨 달라는 것. 며칠 고심 끝에 '꿈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이라는 문구로 손을 봤다. 당시 컴패션 후원자는 4400명 정도. 후원자가 되면 금전 지원뿐 아니라 10년 이상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이를 기르듯 해야 한다고 했다. 일회성 기부에만 익숙한 한국문화에선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해 10월 여성 사업가 다이애나 강씨와 함께 첫 후원파티를 열었다. '광고주 찾아다니는 정성으로' 모셔온 각계 명사들에게 김밥·떡볶이 같은 걸 나눠주며 설득했다. 'FOC (Friends of Compassion) 파티'의 시작이다.

문 전 대표는 그해 11월 처음으로 배우 신애라씨와 함께 필리핀으로 후원 아이들을 만나러 떠났다. 그곳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7~8명 가족이 사는 손바닥만한 판잣집들, 시궁창 냄새 가득한 골목길…. 그곳 컴패션 센터에서 하얀 옷을 입은 크리스티나를 만났어요. 처음 아이를 안고 그 큰 눈을 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어요."

FOC 파티뿐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고, 사진전도 열었다. 식당·상점 등 일반 점포를 홍보 포인트로 삼는 '컴패션 프렌즈샵' 운동도 시작했다. 우간다·케냐·에티오피아·인도·아이티 등에 15번 넘게 후원 아이들을 만나러 다녀왔다. 꽃을 준비할 돈을 마련 못한 남(南)인도의 어머니들은 바닥에 분필로 꽃을 그려놓고 자기 아이들을 후원하러 오는 손님을 맞았다. 차인표·신애라 부부, 주영훈·이윤미 부부, 예지원, 박지윤씨 같은 연예인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열렬한 자원봉사자가 됐다.

그녀는 "광고쟁이든 누구든 갑자기 성인(聖人)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컴패션 같은 공동체에서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얻는다"며 "'날 위해(for me)'로만 살던 사람이 '이웃을 위해(for you)'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문씨는 오는 31일 연예인 등 자원봉사자들의 '컴패션 밴드' 공연 '황홀한 고백'도 준비 중이다. "1993년 컴패션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까지 해외로부터 도움받은 한국 아동 숫자가 10만명이었어요. 2003년, 이제는 거꾸로 해외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세워진 한국 컴패션이 지금 8만명 정도를 돕고 있죠. 지금 제 목표는 결연자 100만명을 만드는 거예요. 왠지 잘 될 것 같은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