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업체·디자이너 힘모아… 한국 디자인 가구 독립선언

최근 iF디자인상, 레드닷 디자인상 등 세계적인 디자인상에서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국내의 디자인 현실은 척박하다. 대개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는 '콘셉트 부문'에서 수상하는데, 이를 뒷받침해줄 국내 제조업 기반이 없어 상품화되지 않고 좋은 디자인이 사장(死藏)되기 일쑤다. 가구 디자인 분야에선 이런 상황이 더 심각하다. 대기업과 중국산으로 양분돼 있어 가구 디자이너가 설 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유명 가구 수입업체들이 국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한국 디자인 가구'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서서 주목된다. 지금까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하는 고급 수입 명품 가구를 판매해온 'aA디자인뮤지엄'과 '웰즈'다. 두 회사는 디자이너들에게 체계적인 제조·유통 경로를 제공하고, 디자이너는 업체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제공하는 일종의 '콜라보레이션(협업)' 형태다.

서울 홍대 매장을 중심으로 유럽 디자인 가구를 선보여온 aA디자인뮤지엄은 지난해 하반기 자체 제작 디자인 브랜드 'aA퍼니처'를 런칭했다. 지난해 '100% 디자인런던'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1.28㎏) 의자 '1.3 체어'로 '최고의 신소재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김기현씨를 비롯해 황두현·임지홍·최근식·신현호씨 등 20·30대 신진 디자이너 10여명이 참여한다. 의자·식탁·소파·캐비닛 등 깔끔한 디자인 가구가 주를 이룬다.

지난 1월 런칭한 웰즈의 한국 디자인 가구 브랜드 '웰즈 오리지널'은 중견 디자이너 양영원·최경란·김상규씨, 신진 디자이너 곽철안·송민수씨 등 10여명과 손잡았다. 좌식·입식 생활이 혼재된 한국 현실에 맞춘 김상규의 의자, 전통 자개장 무늬를 새긴 하지훈의 서랍장, 테트리스 게임을 형상화한 송민수의 서랍장 등 디자이너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다.

명품 가구 수입 업체가 한국 디자이너에 눈을 돌린 이유는 뭘까. 양명원 웰즈 대표는 "국내에선 가구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가구를 생산한 적이 거의 없다"며 "제품 뒤에 숨어 있던 국내 가구 디자이너들에게 제대로 된 '호적'을 찾게 해줘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명한 aA뮤지엄 대표는 "가구 수입업을 하다 보니 국내 가구 시장의 대부분을 중국산 짝퉁이나 비싼 수입산이 차지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며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우리 디자인 인재를 활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디자이너들은 가구 디자인료(설계비처럼 가구를 디자인하면 주는 비용), 제품 판매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등의 제도가 도입된 것을 반기고 있다. 모두 선진국에선 디자이너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돼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전무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