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 實相을 꼬집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9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김기라(38) 개인전 '공동선_모든 산에 오르라!'는 니체의 이 말을 생각나게 하는 전시다. 작가는 세계 각국의 역사·신화(神話) 서적 800권에서 그리스·로마·인도 등의 신상(神像) 사진만을 오려냈다. 그 사진들을 조각내 종이 위에 붙였다. 그리스 여신의 얼굴, 힌두교 시바신의 손, 이집트 신상의 머리, 황소의 다리 등 각종 종교에서 숭배한 신상들을 조합한 결과 흉측한 괴물 형상이 탄생했다. 작가가 이 콜라주 작품에 붙인 이름은 '스펙터(specter)'. '망령(亡靈)'이란 뜻이다.

"신(神)이란 결국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닌가. 욕망의 집결체가 형상화된 신상들이 한데 모이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은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신을 만들었지만, 그 신에 너무 의존하다간 괴물보다 더 끔찍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고다. 대형 사진 콜라주 17점, 관련 드로잉 36점<사진> 등 스펙터 시리즈 60여점과 함께 세계 각국의 골동품 시장에서 수집한 신상 300여점도 전시해 전시장을 사당(祠堂)처럼 꾸몄다.

김기라는 2009년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코카콜라,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이미지를 바로크식 액자에 담은 21세기식 정물화로 소비사회를 비꼬아 주목받은 작가. 이번에도 유리판 위에 금, 다이아몬드, 진주 등 결혼예물을 올려놓은 설치 작품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가짐'으로 물신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02)708-5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