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신동흔의 휴먼 카페] '환갑의 문화 게릴라' 연희단 거리패 예술감독 이윤택

"이것도 정치예요. 캐스팅이나 공천이나 똑같아요. 제대로 해야죠. 연극쟁이는 연극으로 정치하는 거 아입니까."

'연희단 거리패'의 꼭두쇠 이윤택(60)은 대전에 있었다. 그를 만나던 날(19일)은 23일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무대에 올리는 연극 '궁리(窮理)'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작품은 국립극단이 대전과 고양, 안산 등의 지방극장과 공동제작한다.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가 직접 쓰고 연출을 맡았다. 출연 배우들은 모두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연희단 거리패 소속 배우는 두 명만이 선발됐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직장인 '밀양연극촌'과 서울을 KTX로 오가며 연습을 이끌어왔고, 공연을 앞두고 이곳 대전으로 자리를 옮긴 터였다. 어느새 환갑을 맞은 백발의 '문화게릴라'는 구두와 양말을 벗어던지고 배우들과 함께 연습장 바닥을 이리 뛰고 저리 굴렀다.

―연극으로 정치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이번 연극이 정치극인가.

"우리 연극인들은 정치의 계절이 되면 무기력해진다. 정치가 더 '연극적'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코미디도 아닌데 너무 웃기고 재미있다. 정치인들을 보면 연극인들만큼의 진정성도 없다. 우리도 캐스팅할 때 그렇게는 안 한다. 여야가 공천하는 것 보면 저래도 되나 싶을 때가 있다. 배우들도 자존심이 있어서 그 정도로 왔다 갔다는 안 한다. 요즘 온 세상이 정치로 들끓는데 진정성은 안 보이고, 정치인들이 나라를 이끈다고 하는데 솔직히 걱정스럽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우리나라에 대한 진실,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데 불안하니까 그걸 한번 연극적으로 짚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이야기가 던지는 시사점은.

"당시 명나라가 조선에 스트레스를 줬는데 지금도 이어도 문제 터지고 중국이 우리한테 스트레스 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세종의 전략은 뭐였냐 하면 군사무력적인 게 아니라 문화적 독립성을 갖는 거였다. 그래서 장영실 같은 전문가가 중용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문가의 시대가 와야 된다는 것이다. 당리당략에 흔들리는, 보수도 진보도 없는 이 한국 사회에서 자유 평등 민주 보수 진보 같은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전문가 집단, 자율적인 시민집단, 기술자 집단이 세계의 중심, 물적 기반이 되는 사회가 와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주장이다. 진정한 뷔르거(B�jrger·시민)의 삶이 와야 한다."

―왜 시민이라고 하지 않고 '부르거'라고 하나.(독일어로 시민을 뜻하는 말은 뷔르거인데, 그의 발음은 '부르거'였다)

"발음이 안 되어 그런 것은 아니다. 뷔르거라고 하면 좀 잘난체하는 것 같고, 부르조아지라는 말은 의미가 너무 왜곡되어 있다. 유럽 시민계급이 막 부상할 때의 긍정적인 기운을 담기 위해 그 말을 쓴다. 직공과 상인들이 포함된 대단히 현실적인 시민들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89년 부산의 극단을 끌고 서울에 올라와 무대에 올린 작품도 '시민K'였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주의자다. 1983년 처음 발표한 시집도 '시민'이었고, 연극 작품도 '시민K'였다. 80년대는 모두가 민중을 이야기하던 때였다. 망구(밑도 끝도 없다는 의미의 경상도 말) 내 생각이지만, 나는 진짜 시민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

―처음 시를 쓰던 80년대는 민중의 시대 아니었나.

"나는 회색분자다. 쉽게 말해 흰색과 검은색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회색도 색이다' 이런 주장을 했다. 그때 순수 혹은 민중을 이야기하고, 민중·민족·민주 아니면 자유평등밖에 없을 때 나는 소시민을 이야기했다. 나는 '시민, 특히 중산층들, 우리는 도대체 뭐냐' 이런 입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소수였다."

―1986년에 나온 시집에 보면,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네 살배기 딸년의 무서운 식욕' 이런 구절이 나오던데….

"그게 현실적인 것 아닌가. 나는 민중주의자는 못 되었다. 당시 그 소시민적 일상이 중요한데도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직도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내 생각은 80년대나 똑같다. 그런데 우리 지식사회는 너무 빨리 잊는 것 같다. 90년대가 되자 80년대 시인이라는 말을 부끄러워하고, 21세기가 되니 20세기적 인간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왜 70년대의 미학, 80년대의 정신성 이런 것을 손에서 놓아버리나. 상당수 지식인이 90년대 이후 기득권이 되었다. 반(反)권력적 힘에서 반(反)이 없어지고 권력으로 상당히 수용됐다. 성 밖 사람들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전부 다 성안으로 들어갔으니 힘이 약화된 것이다.”

이윤택은 원래 시인이었다. 부산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도 했고, 한일합섬, 한전 등에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부산일보에서 편집기자를 하면서 시작(詩作)과 문학비평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86년 부산 광복동에 가마골소극장을 세우고, 부산 출신 배우들로 구성된 연희단거리패를 만들어 지금까지 왔다. 1988년 ‘산씻김’이라는 연극으로 서울 무대에 처음 등장한 이래 1989년 ‘시민K’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오구-죽음의 형식’ ‘문제적 인간 연산’ 등의 작품으로 연극계에 화두를 던져왔다. 하지만 10년 만인 1999년 경남 밀양에 ‘밀양연극촌’을 만들어 본거지인 지방으로 돌아갔다. 2009년에는 경남 김해로 다시 거처를 옮겨 ‘도요창작스튜디오’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 그의 주소지는 경남 김해고, 직장은 밀양이다.

―처음 서울에 입성할 때 힘들지 않았나.

“사투리를 극복해야 했다. 그래서 서울 무대에 처음 올린 ‘산씻김’이라는 작품은 아예 대사가 없는 연극이었다. 반대로 ‘오구’는 사투리로 승부를 걸었다.”

―현재 직함은.

“동국대 교수도 2년 만에 그만두고 현재 내 공식 직함은 밀양연극촌과 연희단거리패의 예술감독이다. 다른 직함은 없다.”

―2년제 방송통신대만 나오고, 대학 졸업장도 없이 힘들게 교수가 됐는데 너무 빨리 그만둔 것 아닌가.

“2년 정도 했는데 내가 주위를 좀 불편하게 하는 사람인 것 같더라. 그리고 교육을 하기 위해서 굳이 내가 학교에 있을 필요는 없겠구나 생각했다. 연극의 경험을 전수하기에 학교는 제한적이었다.”

―서울에 정착할 생각은 없었나.

“나는 노마드다. 극단 이름도 연희단거리패이지 않은가. 스트리트 시어터, 유랑극단, 순회극단이다.”

―지금은 연희단거리패 구성원들이 전국에서 모이지만, 그때는 어땠나.

“전부 부산 사람이었다. 요즘 영화로 유명해진 배우 오달수도 10년 이상 우리 극단 소속이었다.”

―요즘은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사투리를 그대로 쓰는 배우도 많다.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는 오히려 작가들이 지방 언어로 작품을 써야 한다고 했다. 표준어는 도식화되고 삶의 느낌이 탈색된 언어인 반면, 사투리는 원색적이고 감정이 풍부하게 묻어나는 날것의 언어다. 인간의 실제 생활을 묘사하려면 지방 언어가 가장 좋다. 그래서 나는 사극에도 ‘하옵니다’ ‘상감마마’ 이런 말 안 쓴다. 그것 때문에 감정이 다 죽는다.”

―왜 지방을 고집하나.

“지방적인 것을 중심에서 분리해 사고하는 것이 근대성이다. 그렇게 해서 지역과 지방을 중앙에 예속시키는 것, 그것을 나는 ‘제국주의’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이름 그대로 성숙한 시민사회가 되려면 ‘중앙=서울’ 이라는 등식이 해체되어야 한다.”

―서울을 무시하는 것인가.

“서울은 좋은 시장, 마켓이다. 정치·경제·문화 영역에서 모든 것은 수도에 모이게 돼 있다. 그래서 마켓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만 봐도 음악은 뮌헨이 중심이고 연극은 함부르크가 강하다. 그게 지역이다. 서울은 각 지역의 다양한 요소들을 모으고 소통시키는 유통의 장소다. 생산지일 필요는 없다. 만약 서울이 생산지가 되려면 정말 서울적인 것, 남산골샌님이라든지 궁정문화가 있다. 그것이 서울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 것인가.

“내가 성을 짓고 살아가는 성곽 중심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말을 타고 다니는 노마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반체제는 아니다.”

―성이 있으면 허물고 싶나.

“내가 쓴 ‘춤꾼이야기’라는 시집에도 나오는데 ‘성은 안쪽에서부터 무너진다’는 구절이 있다. 고여 있으면 부패한다는 두려움은 갖고 있다.”

―당신은 성안에 있나 밖에 있나.

“나는 밖에 있다.”

―그렇지만 국립극단 예술감독도 하지 않았나.

“참여정부 시절에 딱 한 번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한 적이 있다. 이창동 감독이 내가 밀양연극촌 세우고 있을 때 정치 참여를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냥 ‘나는 지금 밀양연극촌에 내 이상국가를 세우고 있다. 내 것 세우느라 바쁘다’고 했다. 그 후 내가 연극 ‘오구’를 영화로 찍고 나서 왕창 망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뭐하나 하고 있는데 배우 출신으로 문화부 장관을 지낸 김명곤 당시 국립극장장이 제안을 해왔다. 2년 동안 했다. 그때도 국립극단 해체하려고 했다. 배우는 오디션 받는 시스템으로 바꾸려 했는데 잘 안 되더라. 그래서 또 관뒀다. 젊을 때 9급 공무원 잠깐 한 것 빼고 처음이자 마지막 공직이었다.”

―유인촌 손숙 김명곤 이창동 등 같이했던 배우들이나 동료 중에 장관 된 사람이 많다.

“누가 그런 이야기 하면 ‘나는 청문회 통과 못 한다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이야기한다. 한데 우리나라에서 공직을 왜 그렇게 불명예스럽게 만드나 모르겠다. 장관을 지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휩쓸려 명예롭게 마감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다.”

―주위에 유력한 정치인이 또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경남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내가 처음 부산에서 소극장을 열었을 때 표를 많이 팔아줬다. 그때 문재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변호사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인 내가 들락거리며 표 100장 주고 10만원 받아오고 그런 식으로 지냈다. 그때는 주로 민사소송을 많이 하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정치를 시작한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건축가 승효상도 같은 반이었다.”

―학창 시절에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나.

“문 고문은 정말 모범생이었고, 나는 그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서로 동선(動線)이 달랐다. 그래서 기억나는 일도 없다.”
그가 부산 배우들을 이끌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작고한 시인 기형도는 “문학 무정부주의자 이윤택이 게릴라적으로 서울에 입성한다”고 한 문예지에 썼다. 이후 그에게는 ‘문화게릴라’라는 말이 늘 따라다녔다. 실제 그가 보여준 행보는 게릴라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이었다. 실험성 강한 극을 만들었고, 그와 동시에 영화 시나리오, TV드라마 대본 등을 쓰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순수예술 분야 종사자로서 TV에서 히트한 드라마의 대본을 쓴 것도 남다른 이력이다.

“나는 TV드라마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드라마는 문학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도 많은데 나는 TV드라마에 관념과 의식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1년 최수종 배종옥이 주연한 ‘행복어사전’ 같은 경우는 시인 황동규 선생도 ‘다음 회 어떻게 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동안 잘 갔는데, ‘사랑의 방식’이라는 드라마가 작살이 났다. 거기서 내가 80년대 이야기를 했다. 80년대 운동권을 하다가 미국 유학 갔던 주인공이 돌아와 애인을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자기를 고문했던 검사와 결혼해서 살고 있고,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사람들이 보지 않더라.”

―드라마와는 어떻게 연결이 됐나.

“시민K를 보고 당시 MBC의 신호균 PD가 제안을 해왔다. 드라마는 돈이 되더라. 그다음 내가 SBS로 팔려갔다. 그리고 ‘머나먼 쏭바강’ ‘임꺽정’까지 썼다. 아 ‘모델’이라는 드라마도 썼다. 처음에는 모델 세계의 이면을 쓴다고 시작했는데 방송되자 트렌디 드라마로 유명해졌다.”

―그 시절은 대학로에서 한창 실험극을 할 때 아니었나.

“가장 실험적인 연출가가 가장 대중적인 드라마를 쓴 거지.”

―가능한가. 두 분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나는 붙여보려 했다. 가장 실험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실험적인 것은 언제나 새로운 발상이니까”

―어딘가에 ‘썰의 일인자’라고 소개됐던데.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말은 내 기쁨, 내 밥’이라고 쓴 시도 있다. 왜 그런지 어릴 때부터 과묵한 사람을 영양가 없는 사람으로 봤다. 나는 말도 많고 사고도 많이 쳤다. 세상 사람들이 신중하고 과묵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는 태생적으로 비주류가 아니었나 싶다.”

―용띠니까 올해 환갑, 임진년생 환갑의 게릴라다.

“임진년 용띠다. 임진왜란의 해에 이순신 뮤지컬을 꼭 무대에 올려보고 싶은데 기회가 오지 않는다.”

―이순신 뮤지컬은 이미 무대에 올리지 않았나.

“4년 전 김태호 전 경남 도지사 시절 경남도 지원으로 3년에 걸쳐 작품을 했다. 그리고 도지사가 바뀌었다. 그 직후 집중 감사를 세 차례나 받았다. 걸린 것도 없다. 딱 하나 걸린 것이 우리가 뮤지컬 대회 나가서 6000만원 입장료 받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 부가세가 포함돼 있는 걸 몰랐다. 그래서 600만원 부가세 탈루가 걸렸다. 수익금은 모두 경남도에 납부했다. 나는 이순신도 영웅으로 안 그렸다. 이순신을 직장인으로 그렸다. 무관이라는 자기 직분에 충실한 직장인, 한 가정의 아버지, 지식인으로 그렸다. 그랬더니 ‘왜 성웅 이순신을 소시민으로 만들었느냐’고 비판하더라.”

―당신이 외면할 수 없었던, 그 식욕이 강한 네 살배기 딸은 어떻게 됐나.

“연극을 하고 있다. 고려대 신방과 나와서 직장 생활 2년 하다가 뉴욕으로 갔다. 뉴욕 예술대학원에서 뮤지컬 공부하고 돌아와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자기 작품을 두 번 올렸다. 내가 10년을 집에도 안 들어가고 떠돌았는데, 딸이 내가 한 연극을 부산에서 시작한 것이 내게 큰 수확이다.”

―요즘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다. 대학을 포기하고 스무 살 적부터직장생활을 했으니, 요즘 젊은이들보다 덜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한테 ‘백수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로서 불안함이 주는 긴장, 그게 젊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사색하고 탐색하는 시기를 길게 가져도 좋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게 두려워 대학에 가고, 취직이 안 되면 대학도 7년씩 8년씩 다닌다.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는 나쁜 징조다.”

―시와 소설의 영향력이 옛날만 못하고 작가들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 기울여주는 것 같지도 않다. 스마트폰과 판타지 소설, 게임의 시대에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나.

“나는 ‘한탕’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젊었을 때는 대단히 공격적이었는데 나이가 주는 느슨함은 있다. 옛날에 내가 공격성을 가졌던 이유는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명예를 얻기 위해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좀 명예로운 것 같다. 긴장감이 떨어진다. ‘이 정도면 됐어’ 이런 생각과 하는 싸움인데, 그래서 끊임없이 세상을 탐색한다. 과대망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아직도 ‘나는 언젠가 대박을 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장르가 좋을까. 조선일보 판타지소설에도 응모하려고 했다. 정말 재밌지 않을까.”

―자존심, 명예를 지키는 것은 뭐냐.

“나는 고졸이지만,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인은 불편부당, 무소속, 비소유, 반권력 이런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과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망구 내 생각이지만…. 나는 좌든 우든 당당했다. 86년인가 87년에 젊은 문인들이 무슨 선언을 해서 다 잡혀갔다. 나도 서울에서 연락이 와서 내 이름 넣으라고 해서 넣었다. 시국선언문에 사인도 안 했는데 경찰서에 붙들려 갔다. 경찰 조사를 받는데 ‘시국선언문 안 썼다’는 내용의 자술서를 주고 사인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안 쓴 것은 맞는데 그래도 (당신들 원하는 대로) 사인은 못 해주겠다고 버텼다. 그렇게 이틀을 갇혀 있다가 나왔는데, 운동권 출신들은 지침이 내려와서 다들 그냥 자술서 써주고 나왔다더라, 나만 버틴 거였지.”

―앞으로 계획은.

“60이라는 나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60부터 청춘이라는데 거짓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에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노인들의 세계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다시 시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글쟁이로 복귀하고, 연극에선 교육자의 역할을 하고…. 다시 글쟁이로 가야 마지막 명예로움을 지킬 수 있는데 어떻게 될까. 글쓰기의 명예로움을 위해서 베스트셀러를 한번 써보고 싶은 것이다. 아, 그리고 콜롬비아에 회당 개런티 5000달러를 받고 햄릿 초청 공연도 하러 가야 한다. 아직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