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60대 딸, 90대 어머니와 사진으로 소통하다

"1년여간 어머니 사진을 찍으며 같은 여자로서, 딸로서 그분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젊을 땐 이해가 안 갔던 부분들, 어머니를 향한 복잡한 심정이 조금씩 사라지며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죠."

오랫동안 사진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던 69세 늦깎이 사진작가가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서울 류가헌 갤러리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연다. 주인공은 한설희씨. '노모(老母)'라는 전시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전시회 주제는 올해 92세 친정어머니다.

검버섯이 피고 백발이 흐트러진 옆얼굴, 핏줄이 불거진 앙상한 손, 둥글게 등을 말고 앉은 모습…. 동일한 모델에 배경도 실내나 안마당 정도로 제한돼 있지만, 각각의 컷마다 존재감은 뚜렷하다. 이 사진들로 한씨는 작년 사진작가들이 선정하는 '온빛사진상'을 받았다.

미대 진학을 꿈꿨지만 주변의 반대로 이화여대 불문과에 입학해 졸업한 뒤 한씨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다. 첫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아이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카메라를 든 것이 사진과의 첫 만남이었다. 재미로 조금씩 사진을 찍다가 우연한 기회에 유명 사진작가를 알게 돼 2년간 개인 지도를 받았다. 한씨는 "눈앞의 뿌연 안개가 걷히면서 사물이 뚜렷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진을 향한 '첫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제적·개인적 사정상 사진 활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진을 포기했지만, 그게 첫사랑의 아픈 상처처럼 가슴에 남았어요. 한동안은 카메라도 곁에 두지 않았어요. 일부러 외면하고 보지도 않고 살려고 한 거죠."

다시 사진 공부를 시작한 건 2007년 무렵. 세월은 흘렀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은 아직 뜨거웠다. 여전히 사진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애써 꾹꾹 눌러왔던 갈망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젊을 때보다 감정도 메말랐는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던 끝에 결국 중앙대 사진아카데미에 등록해 사진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신도시 판교의 파헤쳐진 자연 등을 촬영하다 '피사체'로서 어머니를 바라본 건 2010년 9월이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늙고 병들어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진 어머니가 보였어요. '우리 엄마도 곧 사라지겠구나. 내 곁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조차 사라지면 어떻게 하나…. 어머니의 모습을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한씨와 어머니 사이가 늘 원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한씨 아버지는 6·25전쟁 직후 다른 살림을 차렸다. 아버지를 만나 북녘 외딴섬에서 뭍으로 나왔던 어머니는 평생 자신을 떠난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장녀인 한씨는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운 한편 '왜 저렇게 참고만 살까' 하고 답답해했다.

한씨가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도 어머니는 "늙은이를 찍어 뭣하냐"며 손사래를 쳤다. 워낙 카메라를 질색하는 데다 거동마저 불편해 가끔씩 마당에 나갈 때를 제외하곤 촬영도 전부 방안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씨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응시하며 순간순간의 느낌, 미묘한 표정 변화, 그 안에 숨겨진 어머니의 지나온 나날을 담으려 애썼다.

한씨는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오랫동안 카메라를 통해 어머니와 소통하려 한다. "이제까지 살갑지 못했던 맏딸이 '어머니를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진을 찍었다면, 앞으론 다른 시각으로, 좀 더 넉넉하고 깊은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