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맞벌이 해도… 실질 소득 증가 15% 불과

"안팎으로 돈 버니, 얼마나 좋아요."

중견기업 과장인 김지연(35·여)씨는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쓴웃음을 짓는다. 남편과 맞벌이를 해서 버는 한 달 소득이 500만원을 넘지만, 그만큼 씀씀이도 커 외벌이 가구보다 사정이 별로 나을 게 없는데다, 두 딸에게도 시간을 제대로 못내 잘 키우고 있는지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맞벌이를 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기반을 잡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한 달 소득은 496만원으로 외벌이보다 126만원(34%) 많다. 하지만 맞벌이 가구는 가사서비스 비용을 외벌이 가구보다 19만원(37%) 정도 더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가사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외식도 더 자주 하고, 가사도우미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외식비의 경우 한 달에 9만원 정도를 더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사 노동시간이 부족해 발생하는 삶의 질 저하와 같은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맞벌이와 외벌이 소득 격차가 15%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부족한 가사 노동시간 돈으로 해결

LG경제연구원이 25일 발표한 '한국 맞벌이, 가사 노동시간이 부족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맞벌이를 하는 주부는 하루 평균 9.7시간을 일해 일본(10.1), 미국(9.6)과 비슷하다. 그러나 노동의 내용은 크게 다르다. 미국과 일본 맞벌이 주부는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과 가사 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이 각각 5시간 안팎으로 비슷하다. 반면 우리나라 맞벌이 주부는 하루 6시간을 직장에 붙잡혀 있어야 해 가사 노동시간이 3.7시간에 불과하다. 〈그래픽 참고〉

우리나라 맞벌이 가구는 가사 노동시간이 부족한 만큼 삶의 질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LG경제연구원은 이것이 돈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 가치가 되는지 추정했는데, 약 70만원의 가치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70만원을 제하고 나면 맞벌이 가구와 외벌이 가구의 소득 격차는 34%가 아니라 15%로 줄어든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연구원은 가사 노동을 기능별로 분류한 뒤 각각의 행동을 시장에서 대체하기 위해 드는 임금을 곱해 이 금액을 추정해냈다. 예를 들어 맞벌이 가구가 외벌이 가구보다 육아에 한 시간을 덜 썼다면 그만큼 육아의 질이 저하됐을 텐데, 그 부분을 육아도우미의 시간당 임금과 같다고 추정하는 식이다.

◇남녀 임금 격차 줄이고, 탄력근무제 활성화해야

보고서는 미국 가구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분석을 했는데, 미국 맞벌이 가구의 실질 소득 수준은 외벌이 가구보다 50%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15%에 비해 맞벌이 가구의 상대적 소득이 훨씬 많은 것이다.

이는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선진국에 비해 큰 데다, 맞벌이 주부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터에서 오래 일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국내 여성 정규직 평균 임금은 월 156만원에 불과한데, 이는 전업주부의 월간 가사 노동의 가치를 위의 방식으로 계산한 161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지선 연구원은 "여성 인력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여성 정규직 평균 임금을 끌어올리고, 시간제 근로나 탄력근무제 같은 유연 근로제가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