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피 밀반입한 '젊은날의 빚' 갚습니다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낡은 2층 집에 사는 권중석(66)씨는 지난 26일 백혈병 투병 중인 생면부지의 베트남 청년 탄 따이(24)씨 후원계좌에 1000만원을 넣었다. 베트남에 갚아야 할 '젊은날의빚'이 있어서다.

형편이 어려웠던 권씨는 1967년 '밥을 먹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 몸이 약해 자격 미달이었지만 무작정 입영열차에 오른 뒤 호송병에게 3000원의 '뇌물'을 줘 입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전 파병을 자원했다.

그는 베트남 1년 근무를 마치고 1969년 귀국하면서 105㎜ 탄피들을 짐 속에 숨겨 왔다. 부산항에서 당시 거액인 7만원에 탄피를 처분했다.

하지만 "남의 나라 재산을 빼돌렸다"는 가책이 계속 마음을 짓눌렀다고 한다. 기독교 신자인 아내를 만난 뒤 양심의 가책은 더 커졌다. 베트남에 돈을 돌려줄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언론을 통해 한국 정부 초청 국비 장학생으로 인하대에 입학했다가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탄 따이씨이야기를 접했고, 1000만원을 내놓은 것이다.

권씨는 미국에도 돈을 갚기 위해 노력 중이다. 베트남에서 참호 보수작업을 하던 그는 영상 40도가 넘는 땡볕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몸이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병원에서 6개월 소일했다. 그러면서도 8만4800원의 전투수당을 챙겼다. 그는 이 돈도 현재 가치 1000만원으로 잡고 미국에 돌려줄 방법을 찾고 있다. 삼척시를 통해 외교통상부와도 접촉했고, 지금은 미 대사관에 연락해 놓은 상태다.

권씨 생활이 넉넉한 건 아니다. 2001년에 건설 일을 그만둔 뒤 연금과 베트남 참전 유공자 수당, 자식들이 주는 용돈 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50만원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한다. 작년 12월엔 월드비전 삼척시회 주최 '기아체험 난민 걷기대회'에 익명으로 1000만원을 기부했고,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계좌도 7개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