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다른 나] 록밴드 리더로 활동하는 신한금융투자 양선웅(41) 부장

"중3때부터 대졸까지 밴드 활동 증권사 입사 뒤론 손 놓았다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직장을 다니면서도 가능할거야'

2003년 서울직장인밴드 결성 음악도 투자도 '리듬'이 중요"


'전문가가 아닌 30~40대 직장인들로 구성됐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한 방송국이 진행한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저희 팀이 받은 평가입니다. 비록 본선 16강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제 밴드 인생 25년 중 가장 흥분되고 기억에 남는 추억이었습니다.

저는 신한금융투자 마포 지점에서 고객의 자산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마스터 PB입니다. 고객이 맡긴 자금을 주식·채권에 투자하거나 펀드에 가입해서 수익을 내는 일이 주 업무이지요. 동시에 순수 아마추어 직장인 밴드 'S1'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 넥타이를 풀고 기타를 메는 순간 열정적인 로커가 되지요.

직장인들이라고 얕보지 마세요. 긴 머리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은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국 대회에서 대상도 타고 홍대 클럽 등에서 8년째 정기 공연을 개최하는 관록 있는 밴드랍니다. 저와 동료 7명이 2003년 결성한 서울직장인밴드 'S1'은 전국 규모의 직장인 밴드 페스티벌에서 여러 차례 1위를 했고 2008년 부천 록 페스티벌에서는 '백두산' '노브레인' '윤도현밴드' 등 유명 록그룹들과 한 무대에 선 실력파 그룹사운드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 방송국이 주최한 '톱(Top) 밴드'라는 프로그램에 출전해 600여 참가팀 중에 예선 1위로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5개월여 동안 방송에 출연하다 보니 저를 알아보는 분에게 사인해주는 '연예인 생활'도 잠시 맛봤습니다. 작년 말에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저희 밴드의 멘토였던 신해철 코치와 함께 그룹 '넥스트'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는 영광도 누렸지요.

제가 처음 기타의 세계로 빠져든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충남 온양에 있는 고모님댁에 놀러 갔다가 대학생이던 사촌 형의 기타 연주에 반해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 몸속에 로커의 피가 흐르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인기 록그룹 '시나위' 콘서트에 다녀온 후로 돌변했습니다. 곧바로 드럼·베이스 등을 칠 줄 아는 친구를 모아 밴드를 결성하고 대학 졸업 때까지 기타 연주에 매달렸습니다.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밤을 지새우며 기타 치느라 부모님 속도 많이 태워 드렸지요.

학창 시절 제 삶의 전부였던 기타를 손에서 놓은 적도 있습니다. 2000년 봄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 입사하면서였습니다. 신입 사원으로 첫 직장 생활에 적응하고,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주식·채권 매매와 기업 분석법을 배우느라 정신없이 살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입사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어느 날 문득 제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라면 직장을 다니면서도 가능하지 않겠어?' 저는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직장인 밴드 동호회를 찾았습니다. 저와 같은 꿈을 가진 직장인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저는 용기를 얻어 2003년 3월 '서울직장인밴드'를 결성했습니다. 멤버들 직업은 보험회사 직원, 자영업자, 방송 작가 등 다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연습한 끝에 같은 해 12월 홍대 앞 클럽에서 첫 공연을 가졌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저희 연주에 환호하던 관객들이 밴드에 구성원으로 참여하겠다는 동참이 이어지면서 서울직장인밴드는 'S1'부터 'S6'까지 6개로 분화하며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직장인 밴드 동호회 회원도 1만3900명이 넘습니다.

기타 연주와 밴드 생활에 매달리다 보면 직장 생활은 언제 하느냐고 궁금해하는 분도 많습니다. '밴드 생활 하더니 회사 일이 엉망이다' '직장을 다녀서 그런지 연주가 별로다'는 말은 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저는 입사 후 전체 직원 가운데 실적 '톱 50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고, 최근에는 고객 자산을 1000억원 이상 관리하는 최우수 PB로 3년 연속 뽑히기도 했습니다.

로커 생활이 회사 업무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음악에서 리듬이 중요하듯이 주식 투자에서도 시장 흐름을 잘 읽고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한소리를 내기 위해 서로 연주하는 음(音)을 듣고 화음을 이루듯이 직장에서도 상대방 얘기를 경청하고 팀워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게 음악은 직장 생활의 또 다른 '멘토(mentor)'입니다.

요즘은 매주 화요일 저녁에 서울 성동구에 있는 연습실에 모여 2~3시간씩 연습하면서 5월 정기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조금 힘들지만, 직장과 음악을 모두 즐기는 것을 보면 저는 분명 행복한 로커입니다. 앞으로도 기타와 주식 투자 모두를 멋지게 연주하는 증권맨이자 로커로 신나게 살아볼 계획입니다.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제목처럼 말이지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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