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발암제품' 검역 시스템에 구멍

시중에 유통 중인 중국산 젓가락·국자·밥그릇·대접 등 식기류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발암물질이 잇따라 검출되고 있다. 이 제품들은 상당수 소비자에게 팔려나가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다.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을 많이 함유한 중국산 제품이 대형 마트나 전통시장에서 최근 1개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견되자, 중국산 수입 공산품에 대한 안전성 검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위험한 중국산 제품이 통관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국내 시장에서 대량 유통되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들이 한국의 검역 시스템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나라에선 해외 제품을 들여올 때 최초 수입분에 대한 정밀 검사를 통과하면 이후에는 서류 검사만으로 같은 제품을 통관시켜주는 것이 관례다. 수만 가지 제품의 엄청난 물량을 일일이 검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을 중국 기업들이 악용, 처음엔 안전 기준을 충족한 식기류 제품을 수출해 검사에 합격한 뒤 그다음부터는 안전성 관리를 소홀히 한 제품들을 만들어 서류검사만으로 한국 시장에 팔아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정부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식품·식기류는 31만2000여건, 130억달러어치에 이른다. 이 가운데 26%가 최초 수입분 검사를 포함한 정밀검사를 받았다. 식약청 홍헌우 수입식품과장은 "서류 심사 과정에서도 연간 수입 건수의 5%는 무작위로 추가 검사를 해 중국산 불량품을 최대한 막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생산업체들이 수입 초기에는 검사 통과를 위해 소량을 생산해 품질 관리에 신경을 쓰다가, 검사가 끝나면 위해 물질을 함유한 값싼 재료로 바꾸거나 품질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올 들어 유통 중인 공산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발암물질이 검출된 제품은 모두 중국산이었다.

2009년 12월 최초 수입분 검사 당시 적합 판정을 받아 유통됐던 '플라워' 멜라민수지 공기와 대접의 경우 지난 26일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4.0㎎/L)의 3~5배(12.3~21.3㎎/L) 이상 들어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달 10일 중국산 멜라민수지 '징핀(JINGPIN)' 젓가락에서는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4.0ppm)의 3배를 초과한 14.6ppm이 검출됐고, 지난 7일에는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쿡잇(Cook it)' 멜라민수지 국자에서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4.0㎎/L)의 9배 이상인 37.1㎎/L 검출됐다. 이 제품들도 모두 첫 수입 당시 문제없었으며, 그 후 수입분이 유통 과정에서 적발된 사례다.

한양여대 신성균 교수는 "아직은 중국의 기술 수준이나 관리 감독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조금이라도 단가가 더 싼 제품을 골라 이윤을 더 남기려는 국내 수입업체들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 곽노성 연구원은 "대기업이나 대형 수입업체는 그나마 자기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품을 책임지고 회수해야 하는 부담을 갖지만, 중소업체의 경우 판매 이윤보다 회수 비용이 더 커질 경우 문 닫고 모르쇠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수입업체에 강한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쓰고 있다. 제품에 대한 모든 안전 검사를 수입업체가 책임지고 실시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만 제품 수입을 허가한다. 일본에는 정부가 공인한 안전검사기관이 1000여개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100개 남짓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중국산 위해 제품을 차단하려면 생산 현장 검사 시스템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생산 단계에서 일정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제품은 아예 국내에 들여올 수 없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미국은 '식품 안전 현대화법'을 통과시켜 FDA(식품의약청)가 올해부터 연간 600곳 이상의 수입 식품 생산 현장에 직접 조사를 나가며, 조사 대상을 향후 5년간 매년 두배씩 늘려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