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바닷속 음파탐지기 소리에 고래 귀가 찢어진다

벽과 천장이 다른 집과 맞닿아 있는 아파트에서는 소음 문제로 이웃끼리 낯을 붉히는 일이 많다. 자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아파트 소음처럼 감정이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심각한 문제다. 바다와 숲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엄청난 소음이 동식물을 절멸(絶滅)의 위기로 내모는 것이다.

미 국립과학재단 산하 국립진화종합센터 연구진은 천연가스 채굴지가 밀집된 멕시코 북서부 숲에서 4년간 소음이 숲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숲에서 측정한 소음도는 고속도로에서 500m 떨어진 곳과 비슷했다. 이 숲에는 미국잣나무가 많이 자란다. 숲에 사는 새인 덤불어치는 잣나무 열매를 땅속에 숨겨놓고 정기적으로 찾아와 먹는다. 그중 일부는 새가 나중에 찾지 못해 싹을 틔운다.

지난 21일 영국 ‘왕립학회보 B’에 실린 논문은 이 숲에서 소음으로 잣나무의 씨가 마르는 과정을 보여줬다. 천연가스 채굴로 소음이 심해지자 덤불어치는 조용한 숲을 찾아 떠났다. 씨를 땅에 묻어줄 새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소음에도 잘 견디며 사는 생쥐가 늘었다. 생쥐는 잣나무 열매를 보는 족족 먹어치웠다. 열매는 생쥐 뱃속에서 다 소화된다. 결국 조용한 숲은 잣나무로 우거지지만 소음이 심한 숲은 점점 잣나무가 줄어든다. 연구진은 “잣나무가 다 자랄 때까지는 수십년이 걸리므로 소음의 피해 역시 장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잣나무에 의존하는 수백종의 생물도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이 만든 소음이 식물에도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소음에 피해를 보는 생물이라면 단연 고래를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서양의 섬들과 미국 동부 해안에 사인(死因)을 알 수 없는 고래 시체들이 집단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해군의 수중음파탐지기를 의심했다. 고래는 저주파의 울음소리로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수중음파탐지기에서 나오는 저주파가 이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래 시체들이 발견된 곳 근처에서 해군의 훈련이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수중음파탐지기로 인한 소음은 사람의 안전을 위한 소음 한계치의 무려 10억배나 된다고 한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대화하려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고래도 수중음파탐지기의 소음을 이기기 위해 소리를 높였다. 때로는 소음에 놀라 갑자기 몸을 틀거나 물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이러면 갑작스런 압력변화로 귀에 심각한 이상이 일어나기 쉽다. 바닷가에서 발견된 고래 중에는 귀에서 피를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

소음은 다양하다. 대형 화물선의 엔진이나 프로펠러가 내는 소음도 고래의 울음소리와 주파수 대역이 겹친다. 태평양에서 선박 소음은 10년마다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미국에서 9·11 테러 사건 이후 선박 항해가 일시적으로 줄었을 때 고래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덩달아 떨어졌다고 밝혔다. 석유 탐사를 위해 바다 밑바닥에 쏘는 공기충격파도 고래에게 위협이 된다. 해상 풍력발전기도 문제다.

해변에 쓸려온 고래 시체는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고래는 2400㎞ 떨어진 곳에서도 동료가 내는 저주파를 들을 수 있다. 국제동물보호기금이 지난 200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바다의 소음이 심해지면서 그 거리가 80~160㎞로 줄었다고 한다. 통신망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고래도 통신망이 망가지면 먹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짝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고래가 사라지면 생태계가 무너져 다른 해양 생물도 위험해진다.

지난해 8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민간과 군이 힘을 합쳐 해양 소음을 줄이기 위한 장기연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적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해상 풍력발전기 기둥 밑에 공기 거품을 뿜어내면 소음을 차단할 수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의 엔진 성능을 높여 소음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래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바꾸는 일일지 모른다. 고래를 인간과 대등한 존재로 볼 때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총회에서 “지능이나 사회조직의 복잡성을 볼 때 고래는 생존권을 지닌 ‘비(非)인류 인격체(non-human person)’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실제로 돌고래는 인간처럼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다. 언제쯤 인류는 자연이라는 공동주택에서 옆집·아랫집에 피해를 주지 않는 ‘개념 있는’ 이웃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