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쓰고 노래하라 했던 당신, 보고 있나"

"록 그룹 보컬리스트로 데뷔했지만, 얼굴이 목소리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면을 쓰고 활동했다."(강미진)

"데뷔 10년째, 늘 무명이었다. 내가 노래를 가르친 가수가 무대에서 빛나는 걸 보며 '난 왜 저렇게 안 될까' 한숨 쉰 적도 있다." (장정우)

외모·나이·집안 환경…. 노래 실력이 탁월해도 이런 조건 때문에 대중에게 외면받는 가수는 늘 있는 법이다. 요즘 이런 '한 많은' 가수들이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케이블 채널 '엠넷(Mnet)'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코리아'를 통해서다.

심사위원은 처음엔 출연자 얼굴을 볼 수 없다. 나이·학력·출신지·경력도 모른다. 평가 기준은 오로지 노래. 무명 가수·보컬 트레이너·코러스 가수 등이 나와 화려한 실력을 뽐낸 덕에 방송은 케이블채널로선 '대박'인 7%를 넘어섰다.

'배틀 라운드(2명씩 맞붙어 벌이는 노래 대결)'를 거쳐 4월 6일 생방송에 진출하는 도전자 24명 중 4명을 27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그들이 당한 설움

강미진(이하 강)"20살에 노래자랑 대회에 처음 나갔다. 1등을 했고, 그때부터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여러 번 봤다. '목소리와 얼굴이 어울리지 않는다' '성형수술할 생각은 없느냐'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2007년 '스프링쿨러'라는 록 밴드 보컬리스트로 활동할 땐 사장님이 '가면 쓰고 노래하자'고 했다."

장재호(이하 재) "대학 시절 이벤트 회사에 취직했다. 돌잔치, 기업 행사 등에서 노래하면서 한 달에 100만~120만원을 벌었다. 이번 대회는 오기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무대에 서기 직전 누군가 날 보면서 '저 뚱땡이는 뭐야?'라고 하는 걸 들었다.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너, 내가 노래하는 거 한 번 들어봐.' 이런 마음으로 노래했다."

최준영(이하 최) "16살 때부터 언더그라운드 힙합 가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이유로 기획사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지만, 다들 '살 좀 빼고, 춤 좀 배워서 나가자'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생계를 꾸릴 방법은 아무래도 없어 보였다. 얼마 전까진 부산에서 택배 기사로 일했다. 친한 선생님이 '재능이 아까우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오디션에 나가보라'고 떠밀어서 여기까지 왔다."

장정우(이하 정) "MBC '위대한 탄생1'에서 출연했던 참가자 셰인의 보컬 트레이너다. 2003년 '천국의 계단' OST로 데뷔했지만, 10년가량 무명으로 지냈다. 이헌·케이윌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팀으로 활동했는데, 그 친구들이 나중에 잘 될 때도 난 제자리걸음이었다. 보컬 트레이너로 전향했고, 여러 가수를 가르쳤다. 그들이 무대에 서는 걸 보면서 남몰래 운 적도 있다."

◇그들의 희열

강 "가수 활동을 하면서 악플에 시달린 게 여러 번이다. '못 생겼다' '비호감이다' 등등. '내 노래를 한 번만 제대로 들어달라'는 심정으로 오디션에 나왔다. '여기서도 떨어지면 그땐 음악 공부를 다시 하자' 생각했다. 방송이 나가고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자, 예전에 악플을 썼던 네티즌 몇 명이 트위터로 '미안하다'고 사과 글을 보냈다. 가슴속 앙금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최 "거리에서 사람들이 정말 많이 알아보고 다가온다. 그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예전엔 왜 이렇지 못했을까' 싶기도 하고."

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내 노래를 열심히 들어준다면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래하겠다'는 마음으로 방송에 나왔다. 그런 기회조차 잡을 수 없는 게 현실 아닌가. 한명이라도 들어준다면, 그가 눈물 흘릴 때까지 노래하고 싶었다."

◇그들의 도전

정 "예전엔 '왜 난 못 뜰까'만 생각했다. 이번 오디션을 계기로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론 보다 즐기면서 노래하겠다."

강 "이번 도전으로 많은 걸 얻었다.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새삼 확인했고, 자신감도 되찾았다. 떨어진다 해도, 괜찮다. 다시 일어설 거고, 또 노래할 거다."

재 "나 대신 떨어진 사람들의 몫까지 노래할 거다. 가장 큰 수확은 나 자신을 믿게 됐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