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25] "마나님도 아가씨도 얼음판 씽씽"

"우리의 빙상계는 년년히 약진에 약진을 거듭하야… 명년(1936년) 2월 독일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빙속) 부문에 조선 선수가 출전할 날을 맞게 되였다."(1934년 12월 14일자)

스케이팅 선수 출신 운동기자 고봉오(高鳳梧)는 조선 선수가 동계 올림픽 무대를 밟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연했다. 1933년 1월 22일 한강링크에서 열린 제9회 '전조선 남녀빙상경기' 대회는 신의주 선수 이성덕(李聖德)의 독무대였다. 500m 우승을 비롯 1500m· 5000m·1만m 빙속(氷速) 전 종목을 석권했다.(1933년 1월 24일자) 1934년 벽두 '전일본 학생빙상' 대회선 동경 유학생 최용진(崔龍振)이 500m·1500m에서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했고, 김정연(金正淵)은 5000m·1만m서 우승, 역시 전 종목을 휩쓸었다.(1934년 1월 5일자) 이어 압록강서 열린 '전일본 빙상대회'서도 이가 1500m, 김이 5000m 우승, 1만m선 김·이·최가 1~3위를 차지했다.(2월 5~6일자)

이들의 맹활약 탓인지, 조선의 빙상 열기는 후끈 달았다. '청년도 한강에 학생도 한강에 아가씨도 한강에' 몰리더니, '굽노푼 구두를 버서 버린 그발에, 빗나는 백인(白刃)의 스케트를 묵고' 부엌 마나님과 직장 여성까지 실력을 겨뤘다.(1934년 1월 28일자) 시인 김기림(金基林)은 "기―다란 흰 날로 태양의 광선을 선듯선듯 끈는 그 표연한 롱스케―트의 모양을 매우 사랑햇다"고(1935년 2월 19일자), 애정을 과시할 정도로 조선은 '빙속(氷速)'에 열광했다.

그해, 올림픽 대표선발 예선을 겸한 제6회 '전일본 빙상선수권' 5000m·1만m에서 '예상대로' 김정연과 이성덕이 1·2위, 신예 장우식(張祐植)이 3위를 차지(1935년 1월 23일자), 모두 올림픽 대표에 선발됐다.

1936년 2월 6일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제4회 동계올림픽 빙속 5000m서 김은 21위, 이·장은 동률 27위, 1500m서 김은 15위, 이는 23위, 가장 기대가 컸던 1만m서 김은 올림픽 및 일본 신기록을 작성하고도 13위에 그쳤다.(1936년 2월 13~15일자) '동양 최고'였지만,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다. 올림픽 빙속 금메달의 꿈은 그 65년 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실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