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변한다] [10] 길이 60m 콘크리트 기차가 숲에 앉았다

긴 모양은 실내의 공간 구조와 동선으로 이어진다. 3개의 방과 거실이 일렬로 배치됐고, 방과 방 사이에 중정(中庭) 역할을 하는 작은 공간이 끼워져 있다. 건축가는 "채와 채 사이에 비어 있는 마당을 두는 한옥의 공간 구성을 직선으로 재배치해 본 것"이라 했다. 방 뒤로 폭 1.2m에 길이 60m 정도 되는 긴 복도가 이어진다. 이 복도를 거닐며 창을 통해 뒷산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을 관람하는 갤러리 같은 회랑(回廊·긴 복도)"이란다. '숲에 앉은 집'이라는 갤러리의 전시 작품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이었다.

파격 실험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건축주는 "누구는 고가도로 같다고 하고 누구는 창이 많아 발가벗고 숲속에 앉아 있는 느낌이라고도 하더라"며 "문화 충격에 적응 중"이라 했다. 이 말에 건축가가 화답한다. "건축주에 대한 최고의 서비스는 현재 그들의 일상을 좀 더 진화(進化)시켜주는 것"이라고. 사각의 '자연 액자' 사이로 봄기운을 머금은 바람 소리가 스며들었다.

 

"이게 집이라고요?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지요?"

건축가가 건넨 모형을 보고 최만호(58)씨 부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 앞에 놓인 모형은 외벽에 사각 구멍이 뽕뽕 뚫린 길이 100m의 기다란 직육면체 집이었다.

"그냥 편한 집을 원하면 아파트에서 사시면 되지 왜 시골까지 오십니까. 자연을 찾아 숲으로 오셨다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집을 지어야지요."

김인철(65·아르키움 대표)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가 당황한 건축주 부부를 설득했다. 김 교수는 서울 논현동 사거리의 랜드마크인 '어반 하이브', '김옥길 기념관' 등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1년여에 걸친 대화 끝에 부부는 건축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00m 길이는 60m로 줄인다는 단서를 단 채.

올 초 경기도 양평에 들어선 전원주택 '숲에 앉은 집'의 탄생 스토리다. 사업가로서 도시의 일상에 젊음을 쏟아 바친 건축주가 은퇴를 앞두고 "자연을 즐기면서도 개성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한 집(연면적 336㎡·공사비 평당 약 700만원)이다. 28일 이 집에서 만난 건축주는 "개성 있는 집을 주문했지만 이 정도로 파격일 줄은 몰랐다. 모험 그 자체였다"며 웃었다.

자연(自然)은 이 집의 존재 이유다. "집의 무대를 전원(田園)으로 옮기는 건 일상을 자연의 풍경 속으로 삽입한다는 의미다. 건축주가 젊은 날 도시에서 숨 쉴 틈 없이 빨리 흘려보냈던 시간을, 이 집에선 느리게 흘러가도록 하고 싶었다." 김 교수는 "슬로 스페이스(slow space·느리게 사는 공간)가 이 집의 테마"라고 했다.

자연을 느리게, 천천히 만끽하게 하기 위해 건축가는 집을 길쭉하게 늘어뜨렸다. 좌우로 60m 길이의 노출 콘크리트 박스가 지면에서 붕 떠서 두 언덕에 걸쳐 있는 형태다. 멀리서 보면 이름처럼 숲 속에 살포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 교수는 "기존 지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연을 최대한 감상하기 위한 해법이었다"고 했다. "대지 자체가 산에 둘러싸여 움푹 팬 형태라 습(濕)하고 음(陰)의 기운이 강했다. 땅의 음기를 바꾸면서 기존 산의 능선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이 필로티(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방법)였다." 그 결과 뒷산은 그대로 유지되고 땅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집 아래로 연결됐다.

외형은 "일상의 잡다함을 덜어내기 위해" 단순한 사각으로 했고, 마감은 자연 재료인 노출 콘크리트를 썼다. 밋밋할 뻔했던 외관에 변화를 주는 건 건물 앞면과 뒷면에 뚫려 있는 30여개의 사각 구멍이다. 이 사각의 창은 건물 내부에선 외부의 자연을 감상하는 다양한 프레임(액자) 역할을 한다. 어떤 창으로는 하늘이 보이고, 어떤 창으로는 저 멀리 동네 어귀가 보인다. 김 교수는 "자연을 대하는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는 창이자 집의 안과 밖이 교감하는 방법"이라 했다. 이 사각 틀 때문에 언뜻 보면 기차가 언덕 사이를 지나는 것처럼 보인다. 움직이는 기차 창밖으로 풍경을 감상하는 장면을 염두에 둔 디자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