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재고 20일분… 장기화땐 모두 피해자

"정부는 돼지고기 무관세 수입을 즉각 포기하라. 구제역 피해에서 간신히 회복했는데 수입산 고기까지 들어오면 양돈 농가들은 다 죽는다."(양돈협회) "지금도 삼겹살이 부족하다. 가격급등 조짐이 보인다. 출하금지를 당장 그만두라."(농림수산식품부) 삼겹살 무관세 수입을 두고 정부와 양돈협회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급기야 양돈협회는 2일부터 농가들에 돼지고기 출하 금지령을 내렸다.

1일 찾아간 경기도 포천시의 양돈 농가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양돈협회는 출하금지 기간을 '무기한'으로 뒀지만, 현재 농가들과 내부적으로 합의한 기간은 일주일이다. 농가들이 다같이 출하금지에 동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국내에서 하루에 도축되는 돼지는 약 5만3000마리다. 협회 측은 각 도축장에 24시간 감시요원을 두고, 출하금지령을 어기는 농가는 공개할 계획이다.

돼지 2000마리를 키우고 있는 최영길(46) 사장의 경우 일주일간 돼지 출하를 멈추면 700만원 정도를 손해 본다. 돼지고기는 출하시기를 놓치면 제 가격을 못 받는 데다, 이후 농가들에서 한꺼번에 돼지를 출하하면 돼지고기 값 자체가 내려간다. "지난 2년간 사료값은 40%가, 기름값은 20~30%가 올랐어요. 농가들은 지금 생산원가 이하로 출하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출하 지연으로 생기는 손실은 고스란히 농가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농가들은 서로 눈치 보는 상황이다. 경기도 양주에서 돼지 3000마리를 키우는 양모(40) 사장은 "2~3일은 출하를 안 하겠지만 중간에 약속을 어기는 농가가 발생하면 우리도 가만 있지만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양돈협회는 "올해 4~6월 국내 도축두수(예상치)는 361만 두로 구제역 전인 2년 전과 거의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수입고기를 들여오지 않아도 내부 공급이 충분하기 때문에 무관세 수입을 중단하라는 소리다.

외국산 돼지고기 무관세 수입을 두고 양돈 농가들의 반발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강경하다. 정부는 구제역으로 돼지고기값이 급등하자, 지난해 1년간 외국산 돼지고기 23만t을 무관세로 수입해 풀었다. 돼지고기 관세는 22~25% 정도다. 돼지고기의 경우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후에도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기 때문에 아직 무관세 수입 대상국은 없다. 정부는 올해 물가안정을 위해 1~3월 7만t에 이어 4~6월에도 추가로 7만t을 무관세로 들여오겠다고 발표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삼겹살은 만성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데다, 가격이 평년보다 20% 이상 높아 여름 행락철 수급불안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에 따르면,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4200~4400원(㎏) 수준으로 평년 대비 15%가 높고, 추정 생산비(4034원/㎏)보다도 높다. 지난해 사료 가격이 11.8% 올라 생산비가 2010년 3180원(kg)에서 2011년 4034원(kg)으로 올랐지만, 가격이 이보다 높게 형성되고 있어 농민들은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권찬호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각 유통단계별로 20일치 물량이 확보돼 있는 상태라 열흘 이상 출하가 중단돼도 문제없다"고 말했다

정작 양측의 팽팽한 입장을 접하는 소비자와 유통업체들은 꽤 불안한 상황이다. 유통업체는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출하가 안 돼도 국내 대형마트들은 재고량만으로 열흘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냉동육이나 수입산을 내다 팔 수밖에 없다. 롯데마트 김형주 바이어는 "출하 금지 소문이 돌면서 지난달 말부터 돼지 도매가가 들썩이기 시작해 앞으로 일주일간 소폭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마트들은 판매가를 올리지 않을 계획이다. 출하 금지령이 풀리면 돼지고기 공급이 크게 늘어 값이 떨어지는 데다 최근 한우가 싸지면서 돼지고기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롯데마트는 4일까지 제주돼지 앞다리·뒷다리 등심(100g)을 35% 이상 내린 1000원에 판매하고, 이후 삼겹살 40% 가격 인하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 역시 출하 중단시 재고물량을 방출할 계획이다. 이미 육류유통수출입협회와 대형 유통업체 등에 사전 대비를 권고해 놓은 상태다. 현재 수입 삼겹살 재고물량은 1만5135t으로 20일 정도 버틸 수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정민국 연구원은 "무관세 돼지고기가 들어오면 전체적인 가격 인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는 시장의 수급 상황과 돼지고기값 추이를 보면서 무관세 수입을 탄력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