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의 세상읽기] 大地의 사랑, 마곡의 눈물
입력 : 2012.04.02 23:11
펄벅의 '대지'를 읽으면서 강서구 마곡의 슬픈 역사를 본다
선거 있을 때마다 바뀌는 계획, 열흘 뒤엔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두가 어울린 '한국판 대지'를 과연 누가 실현할 수 있을까
펄벅의 '대지(大地)'를 읽다가 3년 전 마지막 통화가 떠올랐다. 장영희 교수가 수화기 저편에서 말했다. "아파서… 더 연재(連載)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가 힘없는 목소리를 남긴 채 세상을 뜬 게 어제 같다. 세월은 이렇게 덧없다.
'대지' '아들들' '분열된 일가'의 3부작을 국내에 알린 게 장왕록 교수다. 펄벅과 친분이 두터웠던 아버지의 번역본을 딸은 생의 유작(遺作)으로 삼았다. 암과 싸우며 글을 다듬을 때 그에겐 필시 아버지인 '땅'의 힘이 전해졌을 것이다.
소설은 3대(代)의 이야기를 다룬다. 땅을 사랑하는 농부 왕룽(王龍)부터 아들, 손자가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모두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땅이 없으면 살 수 없어." 왕룽이 임종(臨終)할 때 남긴 말이다. 소설 '대지'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람과 땅이 하나라는 것이다. 왕룽의 셋째 아들로 천하 제패를 꿈꾸던 왕후(王虎)는 흙집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거기서 독자들은 인간과 역사의 덧없는 변전(變轉) 속에서 떳떳이 버티고 선 대지를 본다.
서울 강서구 한복판에서 김포공항 쪽을 달릴 때마다 '대지'와 그 번역에 삶을 바친 부녀가 생각난다. 등촌동 지나 양편으로 넓은 광야가 나타난다. 대지만큼은 안되지만 그 쓸쓸한 분위기가 자못 소설 속 무대 같다.
그 땅은 마곡(麻谷)이라 불린다. 마곡 면적은 여의도보다 넓은 100만평이다. 이름의 유래를 두고 두 갈래 이야기가 있다. '옛부터 삼(麻)이 많이 나는 골짜기(谷)'라는 게 정설인데 '말(馬)들이 곡(哭)을 해' 붙은 것이라는 이설(異說)도 있다. 임진왜란 때 이름 모를 장군들과 의병들이 열심히 왜군과 싸우다 보니 말들이 지쳐 울었다는 것인데, 후자는 '전설 따라 삼천리' 격의 해석 같다. 그런 땅이 지금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넓은 개발지이기 때문이다.
마곡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을 기다리는 도화지 같은 곳이다. 주변에 지하철 5호선 마곡·발산역과 9호선 신방화·마곡나루·양천향교역이 이미 가동되고 있다. 그럴듯한 그림만 그리면 되는데 스케치는 이미 오래전에 완성됐다.
원래 서울시는 이곳을 첨단융합기술 R&D센터로 개발하려 했다. 여기에 한강물을 끌어들여 수변(水邊)도시로 만들면 세계적인 수상관광도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봤다. 강서구민들은 이런 꿈이 성사되길 바라며 오랜 시간을 인내해왔다. 서울시는 이미 3조5000억원을 들여 땅주인에게 보상까지 마쳤다. 돈을 은행에서 빌렸으니 허허벌판 토지에 들어가는 하루 이자가 4억5000만원꼴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끝에 LG그룹이 12개 기업의 R&D센터를 세우겠다며 손을 들었다.
'대지' '아들들' '분열된 일가'의 3부작을 국내에 알린 게 장왕록 교수다. 펄벅과 친분이 두터웠던 아버지의 번역본을 딸은 생의 유작(遺作)으로 삼았다. 암과 싸우며 글을 다듬을 때 그에겐 필시 아버지인 '땅'의 힘이 전해졌을 것이다.
소설은 3대(代)의 이야기를 다룬다. 땅을 사랑하는 농부 왕룽(王龍)부터 아들, 손자가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모두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땅이 없으면 살 수 없어." 왕룽이 임종(臨終)할 때 남긴 말이다. 소설 '대지'가 던지는 메시지는 사람과 땅이 하나라는 것이다. 왕룽의 셋째 아들로 천하 제패를 꿈꾸던 왕후(王虎)는 흙집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거기서 독자들은 인간과 역사의 덧없는 변전(變轉) 속에서 떳떳이 버티고 선 대지를 본다.
서울 강서구 한복판에서 김포공항 쪽을 달릴 때마다 '대지'와 그 번역에 삶을 바친 부녀가 생각난다. 등촌동 지나 양편으로 넓은 광야가 나타난다. 대지만큼은 안되지만 그 쓸쓸한 분위기가 자못 소설 속 무대 같다.
그 땅은 마곡(麻谷)이라 불린다. 마곡 면적은 여의도보다 넓은 100만평이다. 이름의 유래를 두고 두 갈래 이야기가 있다. '옛부터 삼(麻)이 많이 나는 골짜기(谷)'라는 게 정설인데 '말(馬)들이 곡(哭)을 해' 붙은 것이라는 이설(異說)도 있다. 임진왜란 때 이름 모를 장군들과 의병들이 열심히 왜군과 싸우다 보니 말들이 지쳐 울었다는 것인데, 후자는 '전설 따라 삼천리' 격의 해석 같다. 그런 땅이 지금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넓은 개발지이기 때문이다.
마곡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을 기다리는 도화지 같은 곳이다. 주변에 지하철 5호선 마곡·발산역과 9호선 신방화·마곡나루·양천향교역이 이미 가동되고 있다. 그럴듯한 그림만 그리면 되는데 스케치는 이미 오래전에 완성됐다.
원래 서울시는 이곳을 첨단융합기술 R&D센터로 개발하려 했다. 여기에 한강물을 끌어들여 수변(水邊)도시로 만들면 세계적인 수상관광도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봤다. 강서구민들은 이런 꿈이 성사되길 바라며 오랜 시간을 인내해왔다. 서울시는 이미 3조5000억원을 들여 땅주인에게 보상까지 마쳤다. 돈을 은행에서 빌렸으니 허허벌판 토지에 들어가는 하루 이자가 4억5000만원꼴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끝에 LG그룹이 12개 기업의 R&D센터를 세우겠다며 손을 들었다.
하회(下回)가 끝을 향하는가 싶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서울시가 LG가 신청한 23만1276㎡를 다 줄 수 없다고 나온 것이다. 분양공고 때는 아무 말이 없다 돌연 "대기업 특혜로 비칠 수 있으니 요구한 땅의 45%만 주겠다"며 말을 바꿨다. 그 뒤 "논농사 짓는 걸 검토하겠다"는 서울시 공무원의 뚱딴지같은 말에 주민들이 분개하자 "대기업 입주가 무산된 건 아니다" "곧 결말난다"는 변명이 뒤따르고 있다. 말이 계속 바뀌는 배경에 '이권' '선거'라는 단어가 빠질 수 없다.
이러는 사이 석 달이 흘렀다. 그동안 이자로 빠져나간 국민 혈세(血稅)가 400억원에 달하며 '이권개입 정황이 보인다' '불법행정 의혹이 있다' '관련자를 직무감찰하라'는 주장이 다름 아닌 박원순 시장과 같은 진영의 시의원 입에서 나왔다.
이미 마곡은 변질됐다. 십년 넘게 만든 계획이 선거마다 흔들린다. 워터프론트는 호수공원으로 축소됐다. 첨단기업 유치에 돌연 '중소기업과의 상생'이 등장했다. 대하(大河)드라마는커녕 표(票)를 의식한 칙칙한 하수구를 방불케 한다. 강서구는 서울에서 영구임대주택이 제일 많다. 그 수가 2만채나 된다. 중산층·서민·저소득 노인·장애인·탈북자가 섞여 사는 곳에 대기업이 입주한다면 여길 오갈 때마다 모두가 어울린 한국판 '펄벅의 대지'를 목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좁디좁은 서울에 '마곡의 눈물'과 같은 사례가 너무 많다. 마곡에서 동쪽 끝 개포(開浦)만 해도 그렇다. 권력이 바뀌자 주민들의 애가 닳고 있는데 힘 가진 이는 눈깔사탕 들고 어린애 골리는 식이다. 땅을 멍들이고 갈라놓는 건 바로 사람이다.
어디 이런 사례가 마곡과 개포뿐일까. 면적의 좁고 넓음이 다르겠지만 지금도 방방곡곡에서 땅을 쥐고 뒤흔드는 정객들의 힘겨룸이 한창일 것이다. 마곡의 잡초 무성한 길을 걷고 있는데 봄비가 촉촉이 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다. 일제시대 세운, 채 허물지 못한 건물이 시간의 무상함을 말해주는데 창세기의 구절이 떠오른다.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러는 사이 석 달이 흘렀다. 그동안 이자로 빠져나간 국민 혈세(血稅)가 400억원에 달하며 '이권개입 정황이 보인다' '불법행정 의혹이 있다' '관련자를 직무감찰하라'는 주장이 다름 아닌 박원순 시장과 같은 진영의 시의원 입에서 나왔다.
이미 마곡은 변질됐다. 십년 넘게 만든 계획이 선거마다 흔들린다. 워터프론트는 호수공원으로 축소됐다. 첨단기업 유치에 돌연 '중소기업과의 상생'이 등장했다. 대하(大河)드라마는커녕 표(票)를 의식한 칙칙한 하수구를 방불케 한다. 강서구는 서울에서 영구임대주택이 제일 많다. 그 수가 2만채나 된다. 중산층·서민·저소득 노인·장애인·탈북자가 섞여 사는 곳에 대기업이 입주한다면 여길 오갈 때마다 모두가 어울린 한국판 '펄벅의 대지'를 목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좁디좁은 서울에 '마곡의 눈물'과 같은 사례가 너무 많다. 마곡에서 동쪽 끝 개포(開浦)만 해도 그렇다. 권력이 바뀌자 주민들의 애가 닳고 있는데 힘 가진 이는 눈깔사탕 들고 어린애 골리는 식이다. 땅을 멍들이고 갈라놓는 건 바로 사람이다.
어디 이런 사례가 마곡과 개포뿐일까. 면적의 좁고 넓음이 다르겠지만 지금도 방방곡곡에서 땅을 쥐고 뒤흔드는 정객들의 힘겨룸이 한창일 것이다. 마곡의 잡초 무성한 길을 걷고 있는데 봄비가 촉촉이 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다. 일제시대 세운, 채 허물지 못한 건물이 시간의 무상함을 말해주는데 창세기의 구절이 떠오른다.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