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조선의 서태지' 살려낸 음악인들

김해송(金海松). 1911년 평남 개천에서 태어나 1930년대 숱한 히트곡을 만들어낸 당대의 명(名)작곡가 겸 가수.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남편이며, 1950년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원조 K팝 아이돌'로 꼽히는 김시스터즈 멤버 김애자·김숙자의 아버지다. 그러나 아내와 딸들의 명성에 상대적으로 가려지고, 6·25전쟁 때 북으로 끌려가다 행적이 끊긴 비운의 인물이다. 작년 그의 탄생 100년을 맞아 음악인 후배들이 만든 헌정 앨범 '조선천재 김해송'이 이달 중순 발매된다.

직접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해 '오빠는 풍각쟁이' '청춘삘딩' '개고기주사' 등 김해송이 작곡한 10곡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사람들은 음악 공연단체 '만요 컴퍼니'. 국악평론가 윤중강(53)을 필두로 옛 가요에 흠뻑 빠진 국악인과 뮤지컬 배우들이 2009년 결성한 팀으로, 인천의 복합문화예술 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에 상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인천 해안동 아트플랫폼에서 만난 멤버들은 "김해송은 1930년대의 모차르트이자 서태지"라고 입을 모았다.

'만요(漫謠)'는 민중의 삶과 사회상을 코믹한 가사와 선율로 노래해 크게 사랑받았던 1930년대 대중음악 장르로 김해송이 그 분야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1940년대 전후 일제 탄압이 극심해지고 광복 이후엔 트로트와 서구 음악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이번에 나온 앨범 '조선천재 김해송'의 수록곡은 대부분 만요다.

앨범 제작을 제안하고 주도한 윤중강씨는 "김해송은 초창기 트로트 가수·작곡가쯤으로 인식돼 있지만, 민요와 재즈, 블루스까지 못 다루는 장르가 없었다. 크로스오버의 원조이며 시대를 대표한 모던 보이"라고 했다. "북한군에게 끌려가던 중 살해됐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월북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아 결과적으로 남과 북 모두에게서 버림받게 된 비운의 인물입니다. 진작 헌정·기념 앨범이 나왔어야 했어요."

블루스풍의 노래 '다방의 푸른 꿈'을 부른 유소정(37)씨는 "복각음반(축음기 시절 음반들을 다시 CD에 담아 낸 음반)들을 구해 선곡하고 저작권자들에게 개작 동의를 얻는 등 준비할 일들이 많았지만, 모두들 '좋은 노래를 녹음해 김해송을 널리 알려달라'며 흔쾌히 도와줬다"고 했다. 국악가수 김희성(29)씨는 "앨범 작업은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한 천재 음악인의 맺힌 한을 풀어준 일"이라 했다. 건반을 연주한 박경훈(31)씨는 "원래 작년이 탄생 100주년이었지만 시간에 쫓기지 말고 제대로 만들자며 공들이다 보니 해를 넘겼다"고 했다.

김해송이 작곡한 노래 중 가장 대중적 노래는 월북 작사가 박영호가 노랫말을 쓰고 박향림이 부른 '오빠는 풍각쟁이'다. 애교 넘치는 목소리에 "오빠는 트집쟁이야/오빠는 심술쟁이야" 같은 코믹한 노랫말로 사랑받은 1930년대의 대표적 히트곡.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삽입곡으로 쓰인 뒤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후배 가수들도 '가요무대' 등에서 즐겨 부르고 있다. 이번 앨범에선 국악가수 이은혜(30)씨가 불렀다.

'청춘계급'과 '밀월의 코스'를 듀엣으로 부른 뮤지컬 배우 출신 신계훈(32)·장철(28)씨는 "김해송의 노래들은 옛 노래라고 하기엔 정말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지금 가요팬들도 신선하게 느낄 것"이라 했다.

음반 발매를 코앞에 둔 만요컴퍼니 멤버들의 머릿속에는 벌써 다음 프로젝트 구상이 한창이다. "김해송의 노래들만으로 이야기를 꾸민 주크박스 뮤지컬입니다. 기대하세요. 한국판 '맘마미아'가 나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