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니세프의 歷史, 24년 만에 현장을 떠나다

    입력 : 2012.04.05 03:04 | 수정 : 2012.04.05 03:39

    유니세프 한국委 사무총장 6選 박동은씨, 비상근 부회장으로

    재임기간 중 한국委 모금액 年 32억서 700억으로 급증

    자선단체에 '홍보대사' 도입, 한국 기부문화 확산에 일조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큰 곳은 유니세프에서 한국뿐"

    1994년부터 18년 동안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한국 유니세프의 역사로 불린 박동은 부회장이 3일 서울 창성동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사무총장에서 물러났지만)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많다”며 웃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1994년 32억원이었던 모금액이 이제 연간 700억~800억원쯤 됩니다. 18년 동안 아주 정성스럽게 모금액을 끌어올렸습니다."

    3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 한국위원회에서 만난 박동은(77) 부회장은 "세계 36개국이 모이는 유니세프 본부 이사회에 가서도 늘 '한국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느냐'는 칭찬을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사무소 대외담당관으로 6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18년, 총 24년을 유니세프에 바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지난달 27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그를 비상근(非常勤)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새로운 사무총장을 임명한다고 하자 많은 사람이 놀랐다. 199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생긴 이래 18년간 '사무총장=박동은' 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18년간 손발을 맞춘 현승종 회장마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1세대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니세프는 2차 대전 이후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던 세계 곳곳의 어린이를 돕기 위해 1946년 창설된 유엔 산하 기구다. 선진국에 '국가위원회'를 두고 기금을 모아 개발도상국에 설치한 '대표사무소'에 보내 아동과 여성을 돕게 하는 방식의 원조기구다. 현재 전 세계 156개국에 대표사무소가 있고 36개국에 국가위원회가 있는데, 대표사무소에서 국가위원회로 승격(昇格)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박 부회장은 유니세프의 대모(代母) 일뿐만 아니라 한국 여성계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1959년 동아일보 1기 공채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미혼 여성으로서 대한가족계획협회 홍보부장도 지냈다.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처럼 지금껏 회자되는 슬로건도 그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8년 한국대표부 대외담당관으로 유니세프와 인연을 맺었다.

    "1950년부터 30년 넘게 유니세프 도움을 받아온 한국이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도움을 줄 나라' 후보에 오른 때였지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란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박 부회장은 "한국 사람들이 '기부'를 낯설어했던 시절이라 거의 모든 것을 처음 시도해야 했다"고 말했다.

    후원자를 늘리기 위해 문화예술인 클럽, 법률가 클럽 같은 '후원 클럽'을 5개 만들었다. 소설가 고(故) 박완서씨, 배우 안성기씨를 '친선대사'로 선정해 유니세프 활동을 알렸다. 박 부회장은 "자선단체에 '홍보대사'란 게 생긴 것은 이때부터"라고 했다.

    이어 1994년 마침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출범했다. 한국이 정식으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인정받아 국가위원회가 생긴 것이다. 박 부회장은 "그 이전에 한국대표부를 이끌었던 랄프 디아스 대표가 '지금 한국은 울창한 밀림이다. 네가 나무를 베고 길을 내라'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말대로 박 부회장은 정말로 길을 냈다. 그가 사무총장 임기 3년을 6번 되풀이하는 동안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모금액은 20배 이상 늘었다. 그중 80%가 한 달에 2만원 안팎을 내는 개인 기부자의 모금액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기부문화의 저변이 얼마나 확대됐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저도 6·25전쟁을 겪었고 미군들한테 초콜릿을 얻어먹었다"며 "그런 우리가 남을 돕는다는 감동이 있는 세월이었다"고 했다.

    1994년 18명이었던 직원은 43명까지 늘어났다. 박 부회장은 "2007년 '이제 후임자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심한 지 5년 만에 사무총장직을 물려준 박 부회장은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