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웃음 폭죽, 이번엔 가족 로망스다
입력 : 2012.04.05 03:07
9년만의 장편소설 '위풍당당'
후미진 마을 숨어사는 이들, 그곳을 접수하러 간 조폭…
'입담계의 아트'가 또 터진다
희소식이 있다. 성석제(52)가 돌아왔다. 한동안 그의 너스레와 익살이 예전 같지 않다고 실망한 팬들이라면 기대해도 좋다. 장편소설로는 9년 만인 '위풍당당'(문학동네). 가히 웃음의 폭죽이자 해학의 카니발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차미령은 "까르르, 킥킥, 염치 불고, 체면 불고, 불가항력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이라는 날것의 비유를 썼다. 맞다. 가히 '입담계의 아트'이자 '재담계의 클래식'이다.
동인문학상을 받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2) 이후 작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익살의 유니폼을 조금 지루해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몸에 딱 들어맞는 옷이었지만, 스스로도 따분해져 버린 것이었을까. 소설집 '참말로 좋은 날'(2003)이나 '지금 행복해'(2008) 등에서 그는 웃지 않았고, 웃기지도 않았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동어 반복을 피하고 싶다는 문학적 욕망. 변화와 실험의 시간이 계속됐다. 그는 "사물의 물성(物性)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이라고 말한 뒤,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과 함께 잠깐 휴지기를 뒀다. 그러고는 앞의 말을 이어 "라고 말하면 좀 거창하고…, 여하튼 나름대로 즐거웠고, 경험도 됐던 시간"이라고 요약했다.
단편과 산문 위주로 썼던 지난 9년의 세월 동안 작가가 깨달은 교훈은 '언어를 질료로 하는 문학의 보수성'이다. 그는 "실험이나 방황은 젊었을 때나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의 나이를 위트 있게 상기시킨 뒤 "지금은 좌우가 아니라 위로 가야 할 때"라고 했다. 풀어 말하면 가장 잘 맞는 옷을 입고,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전념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변화와 실험이 가능한 단편과 달리 장편은 잘 모르는 숲은 헤맬 시간이 없게 만드는 장르"라면서 "이번에는 '어떻게'보다 '무엇'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무엇'에 해당하는 키워드가 바로 가족이다.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가족이 된 사람들. '위풍당당'의 서사를 한 줄로 정리하면 후미진 마을에 함께 살게 된 사람들이 그 마을을 '접수'하러 간 조직폭력배 일당과 일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젊은 여자는 조선시대에 죽은 남편 따라 죽어 열녀각 세워진 귀신밖에 없다고 생각해온' 시골 촌구석에서 최고 수준의 '자연미인'인 스무 살 새미를 발견한 조폭들이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대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그 대소동이 벌이는 웃음의 축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그 표면의 축제 아래에서 작가는 2012년의 '가족 로망스'를 새롭게 복원한다.
동인문학상을 받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2) 이후 작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익살의 유니폼을 조금 지루해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몸에 딱 들어맞는 옷이었지만, 스스로도 따분해져 버린 것이었을까. 소설집 '참말로 좋은 날'(2003)이나 '지금 행복해'(2008) 등에서 그는 웃지 않았고, 웃기지도 않았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동어 반복을 피하고 싶다는 문학적 욕망. 변화와 실험의 시간이 계속됐다. 그는 "사물의 물성(物性)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이라고 말한 뒤,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과 함께 잠깐 휴지기를 뒀다. 그러고는 앞의 말을 이어 "라고 말하면 좀 거창하고…, 여하튼 나름대로 즐거웠고, 경험도 됐던 시간"이라고 요약했다.
단편과 산문 위주로 썼던 지난 9년의 세월 동안 작가가 깨달은 교훈은 '언어를 질료로 하는 문학의 보수성'이다. 그는 "실험이나 방황은 젊었을 때나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의 나이를 위트 있게 상기시킨 뒤 "지금은 좌우가 아니라 위로 가야 할 때"라고 했다. 풀어 말하면 가장 잘 맞는 옷을 입고,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전념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변화와 실험이 가능한 단편과 달리 장편은 잘 모르는 숲은 헤맬 시간이 없게 만드는 장르"라면서 "이번에는 '어떻게'보다 '무엇'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무엇'에 해당하는 키워드가 바로 가족이다.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가족이 된 사람들. '위풍당당'의 서사를 한 줄로 정리하면 후미진 마을에 함께 살게 된 사람들이 그 마을을 '접수'하러 간 조직폭력배 일당과 일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젊은 여자는 조선시대에 죽은 남편 따라 죽어 열녀각 세워진 귀신밖에 없다고 생각해온' 시골 촌구석에서 최고 수준의 '자연미인'인 스무 살 새미를 발견한 조폭들이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대소동이 벌어질 수밖에. 그 대소동이 벌이는 웃음의 축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그 표면의 축제 아래에서 작가는 2012년의 '가족 로망스'를 새롭게 복원한다.
이 궁벽한 마을 공동체에 숨어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도적 가족'에 의해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황금 숟가락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 재산 싸움의 처절한 피해자가 된 영필, 재가한 남편의 죽음 이후 남편의 유언장에 의해 완벽하게 소외받은 소희, 여기에 남편의 폭력과 강간을 견디다 못해 탈출한 이령….
흥미로운 것은 '수비'를 하는 마을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공격'을 하는 조폭에게서도 가족의 의미를 짚고 회복시킨다는 것. 의리는 공중분해되고 돈으로만 복종을 사고판다고 알려진 요즘 조폭들에게도 작가는 '돈에 대한 반성'과 '정'(情)의 회복을 요구한다.
작가는 "우리는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나 가족으로부터의 억압에도 시달리지만, 또 그만큼 가족을 이루고 싶어하는 근원적 욕망이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보호받고 또 보호하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또 사랑하고 싶은 욕망. 그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그런 가족에 대한 재발견이라 봐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정확히 10년 전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작가는 고향인 경북 상주에서 열댓 식구가 함께 살았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돌아가신 형님까지 포함하면 그는 3남 3녀 중 넷째.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먹던 밥상에서 조금만 지체하면 반찬은 남아나지 않았다. 속도가 느린, 아니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전투력이 떨어지는 젓가락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숟가락만 사용하던 유년이었다. 늘 부족했지만, 그 밥상 위에서 작가는 식구를, 가족을 확인했다. 그 밥상이 '위풍당당'의 자양분이다. 이 장편은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창안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의 복원과도 거리가 멀다. 우리 안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가족성'에 대한 욕망. 10년 전의 추억을 환기했을 때 작가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위풍당당. '성석제'라는 장르의 위풍당당한 귀환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비'를 하는 마을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공격'을 하는 조폭에게서도 가족의 의미를 짚고 회복시킨다는 것. 의리는 공중분해되고 돈으로만 복종을 사고판다고 알려진 요즘 조폭들에게도 작가는 '돈에 대한 반성'과 '정'(情)의 회복을 요구한다.
작가는 "우리는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나 가족으로부터의 억압에도 시달리지만, 또 그만큼 가족을 이루고 싶어하는 근원적 욕망이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보호받고 또 보호하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또 사랑하고 싶은 욕망. 그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그런 가족에 대한 재발견이라 봐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정확히 10년 전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작가는 고향인 경북 상주에서 열댓 식구가 함께 살았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돌아가신 형님까지 포함하면 그는 3남 3녀 중 넷째.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먹던 밥상에서 조금만 지체하면 반찬은 남아나지 않았다. 속도가 느린, 아니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전투력이 떨어지는 젓가락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숟가락만 사용하던 유년이었다. 늘 부족했지만, 그 밥상 위에서 작가는 식구를, 가족을 확인했다. 그 밥상이 '위풍당당'의 자양분이다. 이 장편은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창안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의 복원과도 거리가 멀다. 우리 안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가족성'에 대한 욕망. 10년 전의 추억을 환기했을 때 작가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위풍당당. '성석제'라는 장르의 위풍당당한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