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내고향' 5000회… 八道 출연 주민만 100만명!

병풍처럼 펼쳐진 보현산 꼭대기 국립천문대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 한 점 없는 밤이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가을이면 사과가 무럭무럭 익어가던 마을, 60여명이 옹기종기 살고 있는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입석리다. 지난달 31일 이 마을 회관 앞뜰엔 아침부터 주민들이 모여 특별한 손님들을 기다렸다. 오후 2시 서울서 온 버스가 회관 앞에 도착하자 징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KBS 1TV '6시 내고향'의 출연진들. MC 성세정·오정연 아나운서를 비롯해 배우 전원주, 트로트가수 박상철·강민·박구윤·김정연, 개그맨 조문식·김종하·노유정, 리포터 고다혜·딜런 등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민들은 아이돌 스타들의 열성팬처럼 환성을 지르며 손님들을 끌어안고 기념 촬영을 했다.

이날 출연진과 제작진은 6시 내고향의 5000회 특집 방송 녹화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6시 내고향은 1991년 5월 첫 전파를 탄 이래 초대 MC 박용호·이금희를 시작으로 아나운서 24명, PD 800여명, 작가 1000여명이 거쳐 간 장수프로그램. 5000회 특집 촬영지로 입석리 마을을 택한 데는 애틋한 사연이 있다. 2014년 완공 예정인 보현산 댐 건설로 마을이 통째로 물에 잠기게 됐기 때문이다. 6시 내고향 팀을 부르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는 김종은(50) 이장. "5000회 특집으로 사연이 있는 마을의 현장 방문 신청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추억을 만들고 싶어 곧바로 신청했습니더. 한식날도 한가위도 올해가 마지막인데…."

출연진들은 마을을 돌아보며 주민들과 '실향'의 아쉬움을 나눈 뒤 함께 저녁상을 차렸다. 마을회관 뒷집에서 고기와 생선을 굽는 동안 강민의 기타연주에 맞춰 박상철이 '무조건' 등 히트곡을 불렀고, 개그맨들은 주민과 얼싸안고 춤을 췄다.

12% 안팎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6시 내고향의 인기는 지방에서 절대적이다. 7년 동안 리포터로 활동해온 트로트 스타 박상철은 "어떤 스케줄보다도 6시 내고향이 1순위"라고 했다. "방방곡곡 다니면서 좋은 음식들은 다 얻어먹다 보니 10㎏이나 쪘어요, 하하. 인심 넉넉한 분들을 만날 때마다 오만해지려던 마음도 사라지고, 악상도 떠올라요. '빵빵'이나 '세월' 같은 곡들은 모두 리포터 하면서 보고 들은 얘기들로 만들었습니다."

출연진 중 막내급인 스물여덟살 오정연 아나운서도 "6시 내고향은 삶의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라고 했다.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남녀노소 구분없이 얼마나 허물없이 잘 지내는데요. 바로 고향의 힘이죠!"

지금까지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마을만 2만여곳, 출연 주민만 100만명이 넘는다. 10년째 고정 출연 중인 김종하(48)는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은 리포터도 사회자도 아닌 마을 주민들"이라고 했다. "전 개그맨이지만 어르신들 유머 감각을 못 따라가요. 여주의 이름난 국숫집 주인 할아버지에게 '맛의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자 '배고플 때 먹으라'고 하셨죠. 시골 어르신들 유머가 '3년 묵은지'라면 개그콘서트는 '3분 컵라면'입니다. 하하." 외국인 리포터 딜런 콜(28)씨는 "외국인들은 한국 하면 서울의 도시풍경부터 떠올리지만 한국의 진정한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시골"이라고 했다.

최성일 PD는 "지방뿐 아니라 대도시 고정 시청자도 적지 않다"고 했다. "점차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화면으로나마 접할 수 있어 도시 시청자들을 매료시키는 것 같다"(이승민 작가)는 설명이다. 영천시 새마을부녀회 이춘자(55) 회장은 "전라도·충청도·강원도… 다른 지역 소식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방에선 안 보는 집 없을 낍니더. 지역감정 해소의 일등공신이 6시 내고향 아입니꺼." 5000회 특집은 9일 저녁 6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