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5년전 火災, 그 단체 그 작품… 테너·무대·지휘의 '3각 화음'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 오른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국립오페라단(단장 김의준)과는 악연(惡緣)이 있다. 지난 2007년 12월 오페라극장 화재 사건 당시, 공연 작품이 바로 국립오페라단의 '라 보엠'이었다. 불이 났던 그 극장에서 그 단체의 그 공연을 바라보는 기분은 조금 묘했다.

하지만 첫날 공연에서는 '테너와 무대, 지휘'라는 삼각 지지대가 튼튼하게 작품을 떠받쳤다. 우선 이날의 주인공인 로돌포 역의 테너 강요셉. 당초 공연 일정보다 하루 일찍 '조기 투입'된 그는 특유의 해맑으면서도 초점이 선명한 고음으로 가난한 시인 역할에 생기를 가득 불어넣었다. 특히 상대의 변심을 의심하는 듯하다가 가슴속에 고이 담아두었던 사랑을 고백하는 3막에서 청아한 절창(絶唱)이 돋보였다.

다음으로 영민한 무대 전환.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코 간디니(연출)와 프랑스의 로익 티에노(무대 디자인)가 합작한 이날 무대에서 이들은 파리 시내의 낡은 옥탑방을 1막에서 재현하고서, 무대 절반은 달빛 아래의 여백으로 넉넉하게 비워두었다.

그 여백의 용도가 궁금할 즈음, 1막 후반에서 로돌포와 미미(소프라노 김영미)가 2중창을 부르며 퇴장하는 동안 건물 자체가 올라가면서 2막의 배경인 모뮈스 카페가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여백과 충만함, 흑백과 화려한 색채감, 수직과 수평의 대비를 살리는 동시에 막간(幕間) 전환 시간을 줄이는 영민한 전략이기도 했다. 연출가와 무대 디자이너가 이렇듯 제대로 판을 깔아주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미리 훔쳐가자 2막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무제타의 왈츠'에서 소프라노 박은주의 능청스러우면서 간드러진 목소리와 연기도 더불어 빛났다.

마지막으로는 무대 아래의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 이탈리아 오페라만 만나면 자유자재로 춤추듯 선(線)을 그리는 정명훈의 지휘봉에 따라서, 서울시향의 현악도 한층 진하게 울어 옐 수 있었다.

4막 미미의 죽음에 앞선 절정에서 금관과 현악의 순간적 불일치는 조금 아쉬웠지만, 2막 종반에서 극적으로 끝맺은 대담함이 무척 빛났다. 2007년 화재가 일어났던 1막의 난로 장면에서 실제 불 대신, 조명으로 처리한 대목도 사려 깊었다.


▲4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