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한 변액연금… 90%(60개 상품 중 54개)가 물가상승률도 못 쫓아가

경기도 분당에 사는 직장인 박성훈(34)씨는 2006년 S생명사의 10년 만기 변액연금보험에 가입해 한 달에 70만원씩을 넣고 있다. 빠듯한 형편에도 노후 준비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55세부터 연금식으로 받을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자동 이체로 보험료가 납입되기 때문에 제대로 안 챙기고 있다가 올해 초 보험사가 보내온 투자 실적 보고서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그동안 총 4550만원을 넣었는데, 현재 총 적립금은 고작 4800만원 정도였다. 수익은 겨우 250만원, 단순히 계산해 봐도 연 1%가 채 안 되는 수익률이다.

설계사에게 따졌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주식시장이 등락을 거듭하면서 전체적으로 수익률이 좋지 않다"는 말만 들었다. 해지할까 고민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해지하면 받는 해약환급금으론 원금을 겨우 건지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럴 거면 차라리 대출이자를 갚거나 적금에 가입할 걸 그랬다. 10년 만기가 되면 다시는 변액연금을 쳐다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소비자원이 4일 발표한, 변액연금보험에 대한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소비자보고서)에 따르면, 박씨의 고통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변액연금보험 가입자들의 일반적인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조사를 담당한 금융소비자연맹은 "조사 대상 변액연금보험 60개 상품 중 6개를 제외한 54개의 수익률이 지난 10년(2002~2011년) 동안의 평균 물가상승률인 3.19%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익률이 1%를 밑도는 상품도 6개에 달했다. 연 4% 이상 수익률을 낸 상품은 3개, 3~4%는 5개에 그쳤다.〈표 참조〉

변액연금보험은 보험사의 운용 실적에 따라 연금 지급액이 달라지는 실적 배당형 상품으로 2002년부터 판매됐는데 "물가를 헤지(hedge·회피)할 수 있다"는 게 주된 판매 슬로건의 하나였다.

다른 상품에 투자했다면 어떨까. 10년 전 코스피지수는 918로,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10년 전에 비해 코스피는 120% 상승했고, 단순 산술평균하면 연 12%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었다. 또 지난 10년간 만기 1년 정기예금 평균금리가 연 4.4%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변액연금은 정기예금보다도 못한 수익률을 낸 셈이다. 대표적인 노후 대비 금융상품의 하나인 변액연금 가입자는 247만명, 이들이 내는 보험료는 연간 1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생명보험협회는 "보험사들이 현재 판매 중인 상품만 조사 대상으로 삼았는데, 수익률 하위권 상품들은 펀드 운용기간이 짧아 불리한 측면이 있다"며 조사 방법에 이의를 제기했다.

◇변액상품 90%는 물가상승률도 못 쫓아가

이번 조사는 2002년 이후 출시된 변액연금보험 상품 60개에 대해 40세 성인 남성이 같은 보험료(월 20만원)로 동시에 가입했다고 가정하고,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을 뽑았다. 운용 기간이 10년이 안 되는 상품은 해당 기간의 연평균 수익률을 따졌다. 조사 결과 보험설계사를 통해 판매된 변액보험상품 중에선 교보우리아이변액연금보험이 연평균 4.06%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수익률이 가장 낮은 상품은 ING생명의 스마트업인베스트변액연금보험으로 0.22%에 불과했다. ING생명 관계자는 “상품을 판매한 시점이 2008년 4월이라 금융위기에 따른 주식 가격 급락의 여파를 많이 입었다”고 해명했다.

수익률 격차가 큰 만큼 실제 연금으로 받게 되는 돈도 크게 차이가 난다. 1위 상품과 최하위 상품에 똑같이 10년 동안 월 20만원씩 총 2400만원을 납입했다면, 1위 상품은 10년 동안 3375만원으로 불어났지만, 최하위 상품은 2454만원에 불과하다는 계산이다. 10년 동안 연금으로 받으면 1위 상품으론 연 408만원을 받는 반면, 최하위는 연 296만원만 받을 수 있다.

◇과도한 사업비에 멍드는 수익률

변액상품의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 중 하나는 보험사들이 ‘사업비’라는 명목으로 비용을 많이 떼기 때문이다. 예컨대 월 20만원씩 변액연금을 납입하는 경우, 1만2000원 정도를 설계사 수수료 등 계약 체결 비용으로 떼고, 1만1200원 정도씩은 계약 유지 비용으로 떼는 구조다.

사업비만을 고려해 소비자에게 가장 유리한 보험은 ING생명의 ‘라이프인베스트변액연금보험’이 1위, PCA생명의 ‘PCA퓨처솔루션변액연금보험’이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이 월 20만원을 보험료로 내면 ING 상품은 그 중 2만3000원만 비용으로 떼는데, PCA 상품은 4만원을 뗀다는 것이다. 업계 평균은 2만5000원 정도였다.

☞ 변액연금

은행 적금처럼 매달 일정액을 납입하면 노후에 연금으로 돌려주는 연금보험의 일종. 노후에 받는 연금액이 미리 정해지는 일반 연금보험과 달리 보험사가 보험료로 받은 돈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한 운용 실적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