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빨리 털자"… 분양가 보장제 다시 등장

4일 한화건설이 경기도 김포 풍무지구에서 분양하는 '한화 꿈에그린 월드 유로메트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건물 외벽과 실내 곳곳에 '계약금 안심 보장제'라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작년 10월 분양에 나선 이 아파트가 대거 청약 미달되자 한화건설이 아파트 입주 시점에서 계약자가 해지를 원할 경우 계약금을 전액 환불해주는 마케팅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한화건설 분양 담당자는 "기존의 분양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분양 조건이 알려지면서 아파트가 한 달에 평균 200채씩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 보장제' '계약금 보장제' '계약조건 보장제'…. 주택시장이 침체기를 겪을 때마다 건설사들이 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선보이는 각종 보장제 마케팅이 부활하고 있다.

◇손실보전 등 보장조건 다양

한라건설은 이번 달 파주 운정신도시에 짓는 '한라비발디 플러스' 미분양 아파트에 대해 '분양가 보장제'를 도입했다. 분양에 나선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전체 공급물량의 40%가 여전히 미분양으로 남아있어서다. 한라건설이 제시한 분양 조건은 전용면적 84㎡인 일부 주택의 가격이 입주(2013년 4월) 후 1년이 지나고 나서도 분양가보다 낮을 경우 분양금액의 최대 5%까지 보장해주는 것. 현재 3.3㎡(1평)당 분양가가 900만~1000만원(평균 1003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집값 하락 시 계약자는 최대 1700만원 선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셈이다.

STX건설은 '수원 장안 STX칸' 아파트의 잔여 주택에 대해 '프리미엄 보장제'를 적용키로 했다. 입주기간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아파트의 평균 시세가 분양가보다 높지 않으면 건설사가 주택 크기에 따라 3000만~5000만원을 되돌려주기로 약속한 것.

최근 소비자들이 미분양 주택의 구입을 주저하는 데는 앞으로 집값이 더 하락하고 건설사들이 추가적인 할인 혜택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도 작용한다. 이런 소비자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계약률을 조기에 높이기 위해 향후 계약조건이 바뀌더라도 이미 계약을 맺은 고객에게 소급 적용해주는 마케팅도 나왔다. 두산중공업은 서울 흥인동 '청계천 두산 위브더제니스' 분양 조건에 '고객 안심 보장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화건설 분양 담당자는 "아파트의 상품성은 충분히 있는데 집값이 계속해서 떨어지다 보니 계약을 망설이는 소비자가 많다"며 "이러한 고객의 관심을 끌려면 보장 마케팅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지·분양 조건 꼼꼼히 따져야"

건설사들이 올 들어 각종 보장제 마케팅을 잇달아 내놓는 것은 청약 열기로 뜨거운 지방과 달리 수도권 분양시장은 여전히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시장이 조만간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기보다 더 큰 손실을 보기 전에 미분양 주택을 한 채라도 더 빨리 떨어내야 한다는 전략도 작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를 판매하는 한 분양대행업체 직원은 "건설사로서는 미분양 물량을 조기에 해소하는 것만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내건 보장제 조건은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전제로 한 것들인 만큼 주택경기 침체가 계속해서 이어질 경우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08~2009년 지방에 공급한 아파트에 대해 분양가 보장을 약속했다가 집값이 떨어져 대규모 해약사태를 겪은 건설사들도 있다.

보장제 아파트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여느 때보다 투자 조건을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건설사가 일정부분 손실을 보전해준다고 하더라도 시장 침체가 장기간 이어져 집값이 보장금액보다 더 크게 떨어지면 계약자도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분양가와 주변 시세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교통·교육 여건 등 향후 발전 가능성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양가 보장제

건설업체가 불황기에 미분양 주택을 팔기 위해 아파트 입주 시점에 집값이 최초 분양가보다 내려가면 일정 금액을 돌려주거나 잔금 납부시 깎아주기로 약속하는 마케팅 방식. 최근에는 계약자가 입주를 앞두고 해약을 원하면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해주는 ‘계약금 보장제’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