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유가에 수익 뚝… 주유소 접고 빌딩 올린다

4일 서울 서초동 서울행정법원 주변에선 지하 2~지상 6층 규모의 빌딩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숯불갈비·중국집·일식당 등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설 이 건물은 이달 말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곳에는 작년까지만 해도 주유소가 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직원은 "주유소 영업이 안 돼 상가로 용도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시내 주유소에 개발 바람이 거세다. 치솟는 휘발유 값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으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주유소가 오피스텔이나 상가 건물로 속속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피스텔·공연장·모델하우스로 변신

서울 도심에서는 요즘 주유소 찾기가 쉽지 않다. 입지가 좋은 대로변 주유소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기존 땅을 다른 용도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황학동의 SK주유소는 지난달 철거에 들어갔다. 사업주인 서울석유 측은 "휘발유 값이 L당 2000원을 넘으면서 손님이 급감해 경영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땅에는 오피스텔(204실)과 도시형 생활주택(98가구)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석유 측은 "서울 양재역 인근에서 운영하던 주유소도 작년 2월부터 오피스빌딩으로 재건축하고 있다"며 "인천이나 다른 수도권 주유소도 용도를 바꿔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40여년간 서울 동교동 홍익대 입구에 있던 청기와주유소도 지난해 영업을 중단했다. 현재 아파트 모델하우스로 사용 중인 이곳은 당초 관광호텔(지상 17층)을 지으려고 했다. 사업자인 SK에너지 측은 "땅 매각에 차질이 빚어져 잠시 모델하우스 부지로 빌려줬다"면서 "올 연말 임대 계약이 끝나는 대로 사업계획을 다시 짤 방침"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문을 닫은 서울 종로구 비원주유소와 돈화문주유소도 '궁중생활사 디지털전시관'과 '돈화문국악예술당'으로 탈바꿈한다.

◇기름값 뛰고 수익 줄자 줄줄이 문 닫아

주유소에 개발 바람이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계속되는 고유가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주유소가 급증하고 있는 탓이다. 1995년 거리 제한이 철폐된 이후 주유소가 급증한 데다 기름 값이 오르면서 석유 소비량마저 둔화되고 있는 것. 실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해 법원 경매에 부쳐진 주유소는 2009년 236곳에서 2010년 301곳, 2011년 434곳으로 매년 늘고 있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휘발유 공급가격이 L당 2000원을 넘고 나서 서울에서만 한 달에 평균 3곳 정도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주유소는 1990년대 중반 이전부터 도심 주요 상권과 교통 중심지에 자리 잡아 입지여건이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임대용으로 활용하면 주유소 장사보다 수익이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실제 SK네트웍스는 2009년 서울 여의도역 인근 주유소를 허물고 지상 36층짜리 주상복합 빌딩(S-트레뉴)을 지어 상당한 분양 수익을 거뒀다.

부동산투자자문업체 '저스트알' 김우희 대표는 "서울 도심 주유소는 유동인구가 풍부한 요지에 있어 임대수익을 노린 투자자에게 인기가 많다"면서 "주거·상업용 빌딩으로 개발하면 임대료도 비싸고 분양에 성공할 가능성이 큰 만큼 앞으로 개발 움직임이 더 활발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