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요리사' 김지운, SF는 어떤 맛일까?

김지운(48) 감독의 영화 이력을 보면 그는 온갖 장르영화를 다 섭렵하려고 작정한 사람 같다. 서부극('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든 누아르('달콤한 인생')든 공포('장화 홍련')든 장르마다 맛깔스러운 영화를 만들어냈고, 한국 관객들은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내놓지 않았던 유일한 장르인 SF(공상과학)물 '인류멸망보고서'를 11일 개봉한다.

영화는 임필성 감독의 '멋진 신세계''해피 버스데이'와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등 단편 세 편을 하나로 모은 옴니버스물이다. 김 감독이 만든 '천상의 피조물'은 불교 수행에 정진해 깨달음을 얻는 로봇 야야기를 다뤘다. 현재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하는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스탠드' 후반작업 때문에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 감독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2005년에 시작한 기획이 이제야 끝을 봤다.

"2005년은 어제 떠오른 아이디어로 오늘 회의하고 다음 날 투자자를 만나던 '한국 영화의 장밋빛 나날'이 저물던 시기였다. 마지막 한 편의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바람에 나와 임필성 감독의 두 편만 촬영을 끝낸 채 6년 동안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그러다 작년 '포기를 모르는' 임필성 감독이 지오 엔터테인먼트와 타임스토리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편을 완성해냈다."

―왜 옴니버스인가.

"'블레이드 러너' '쥬라기공원' '에일리언' '플라이' 등 다른 나라의 SF 명작들이 부러웠다. 한국형 SF의 해법을 찾고 싶었지만 장편으로 만들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옴니버스다. 새롭고 모험적인 시도를 해볼 수도 있고, 자본 부담도 적었기 때문이다."

―'천상의 피조물'에 대해서는 "너무 설명을 늘어놓는다"는 평이 있다.

"2004년 과학기술 창작 문예 공모전에서 입상한 박성환씨의 '레디메이드 보살'이라는 단편을 영화로 만들었다. 소설은 전체가 대화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대화로 이어진다. 난 그 보석 같은 대사들을 영화에 그대로 써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공(空)의 마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원작의 표현을 '마음을 비우고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고치면 '맛'과 '각', '엄정성'을 잃게 된다."

―'라스트 스탠드'는 어떤 영화인가.

"라스베이거스를 탈출해 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는 마약왕을 국경의 작은 마을 보안관(아널드 슈워제네거)이 잡으려고 나서는 얘기다."

―인터뷰에서 말했던 대로 '유쾌한 영화'인가.

"예전에 '내 영화 중 가장 밝고 유쾌한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R등급(만 17세 미만은 부모를 동반해야 볼 수 있는 등급)'이 나올 것 같다. 아, 벌써부터 기사 타이틀이 떠오른다. '김지운 감독, 자기 영화 중에 가장 밝다더니 R등급'."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복귀작이라는 것만으로도 화제다.

"원래는 리암 니슨이 맡기로 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았다. 슈워제네거는 '노(No)'를 못하는 사람 같았다. 무엇이든 수십 번을 반복해도 항상 웃는 얼굴로 편안하게 해주고 불편한 것을 내색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큰 땅덩어리인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다년간의 정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만들기가 힘들지는 않았나.

"한국의 배우와 스태프는 영화가 '자신의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할리우드에선 그저 일일 뿐이다. 시스템에 따라 각자 책임질 일, 할 일만 한다. 초반에는 이런 정서에 괴리도 느꼈고, 조금 쫓기듯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환경과 소재, 배우에 대한 호기심과 무궁무진한 자원, 광대한 로케이션 등은 정말 매력적이다."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이제 '영화 청년'에서 '영화 성인'으로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한다"라고 했다. 성인이 됐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이제 곧 어른이 될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