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한의학이 Korean Medicine? 의사·한의사 '타이틀 매치'

불붙은 이름 전쟁
한의학 영문명 변경 결정에… "한국 의학으로 해석된다"
의사 단체들 일제히 반발
"의사흉내 그만" 1인 시위도

점점 더 막말 전쟁
한의사를 '한방사'라 부른 의총 성명에 한의학계 분노
"한심하고 유치한 양방사들"… 의사들 "억울하면 의대와라"

진료 영역을 두고 사사건건 충돌하던 의사·한의사 단체가 새로운 갈등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싸움은 한의학과 한의사 명칭을 두고 벌어졌다.

두 직군 간의 '이름 전쟁'은 지난달 11일 대한한의사협회가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한의학의 영문명칭을 변경하기로 하면서 촉발됐다. 한의사협회는 현재 Korean Oriental Medicine(한국 동방 의학·KOM), Oriental Medicine(동방 의학·OM) 등으로 혼용되고 있는 한의학의 영문 명칭을 Korean Medicine(KM)으로 변경하기로 의결했다. 한의협 관계자는 "한의학의 기존 영문 명칭이 한의학의 정체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한의학의 국제적 브랜드화를 추진하기 위해 변경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의사협회가 영문 명칭을 변경하기로 하자 의사 단체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의료법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며 "한의사는 의사와는 구분되는 개념인데, Korean Medicine은 '한의학'이 아닌 '한국 의학'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또 "대한의사협회의 영문 약자인 KMA(Korea Medical Association)와도 유사해 혼동을 빚을 수 있으므로 이런 영문표기를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의사협회장 후보가 한의사협회 결정에 반발해 1인시위를 벌이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지난달 25일 의사협회장으로 선출된 노환규 당선인은 후보 시절이던 19일 한의사협회회관 앞에서 "한의사님들, 의사 흉내 그만 내세요. 국민을 속이는 것입니다"라고 쓰인 구호판을 몸에 걸고 1인시위를 벌였다. 한의학 명칭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개업의(醫)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국의사총연합은 지난달 발표한 한 성명에서 한의사를 '한방사'라고 표현해 이름 전쟁에 기름을 끼얹었다.

상호비방의 수위도 높아졌다. 젊은 한의사들로 구성된 참의료실천연합회는 "있지도 않은 '한방사'란 용어로 한의사를 비하했다"며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라고 은유적으로 조롱하는, 유치원생만도 못한 유치한 수사"라고 비난했다. 또 "스스로 높아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남을 낮추는 '양방사'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의사협회 관계자는 "개화기에 근대의학이 전체 국민의 의료 수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던 상황에서 전통의학을 하던 시술자들을 의생(醫生)이라는 신분으로 남겨둔 것이 한의사 제도의 유래"라며 "점차 한의사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니까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하고 의사의 영역을 침범해 의사 흉내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으면 의대에 들어오라"고 말했다. 한 한의사는 "일부 의사들은 한의사를 한방사로 부르는 것뿐 아니라 약사를 '약사개', 간호사는 '깔', 치과의사를 '이빨사' 등으로 비하해 왔다"며 "다른 직역(職域)의 업무를 비하하고 갈등을 유도하는 것은 의사들의 자만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의사와 한의사의 갈등에 대해 "지난해 한의약의 정의를 확대 규정하는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싸고 갈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불거진 것"이라며 "의료시장의 경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 직군의 감정싸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