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문 같은 수익률…변액연금 고객들 속앓이

적립률이 아닌 수익률이 궁금해진 박씨는 월 70만원씩 4년 2개월 동안 모두 3500만원을 입금했는데 3754만원이 되려면 도대체 몇% 금리를 받아야 하는지 복리 계산기를 동원해 거꾸로 계산해 나갔다. 한참 동안 두드려 보던 박씨는 연 수익률이 3.5%(비과세 월복리 적금 기준) 정도라는 답을 구해 냈다.

결국 불친절한 보험사의 운용설명서는 '고객님은 지금까지 월 70만원씩 50회 납부하셨습니다. 그동안 연평균 수익률은 3.5%입니다'라고 쉽게 요약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씨는 "적립률이 107%라고 해서 막연히 수익률이 높은 줄로만 생각했는데, 은행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낮을 줄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암호문 같은 변액연금 수익률 정보

금융 당국과 보험사들은 변액연금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자신이 가입한 보험회사나 생명보험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정보를 찾는 것부터가 너무 어렵다.

K사의 A변액보험(채권형)의 사례를 보자. K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맨 아래 부분에 있는 조그마한 '상품공시' 버튼을 찾아 클릭→변액보험 공시 클릭→변액보험특별계정 버튼 클릭→상품명 클릭 등 네 단계를 거쳐 찾아 들어가야 한다. 생명보험협회 홈페이지에선 여섯 단계가 걸린다.

어렵사리 정보가 있는 곳을 찾더라도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낸 돈 전체에 대한 수익률은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품이 투자하고 있는 펀드의 연간 수익률은 6.6%로 나온다. 이게 변액보험의 진짜 수익률일까. 아니다. 고객이 낸 보험료 중 채권에 투자된 일부 자금에 대한 수익률일 뿐이다.

변액연금은 고객이 낸 보험료를 채권형, 주식형, 이 둘을 섞은 혼합형 펀드 등에 분산 투자한다. 예컨대 고객이 낸 돈 중 10만원을 투자한다면 이를 채권형 펀드에 6만원, 주식형 펀드에 1만원, 혼합형 펀드에 3만원 나눠 굴리는 식이다. 하지만 공시는 이 같은 변액연금의 가입 시스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단지 주식형 따로, 채권형 따로, 혼합형 따로 수익률을 내놓을 뿐이다.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공시된 자료만 가지고 변액연금 수익률을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익률 좌우하는 '사업비' 정보는 숨겨

변액연금에 돈을 넣으면 보험사 상품마다 비율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12% 정도를 비용으로 미리 떼고 펀드에 투자한다. 보험설계사에 대한 수당, 전산 비용, 계좌 유지 비용 등인데 보험사에서는 사업비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자신이 사업비를 얼마나 지불하는지 모른 채 변액연금을 든다. 보험사 홈페이지에 나오는 수익률이란 것도 소비자들이 낸 돈에서 사업비를 뺀 돈(보통 88%)에 대한 수익률만을 공개한다.

사업비 정보가 없는 수익률 정보는 착시 현상을 낳는다. 앞서 예를 든 A변액연금의 경우 공시를 보면 수익률이 6.6%로 되어 있지만, 사업비까지 포함해 수익률을 다시 계산하면 분모인 원금 부분이 커지는 셈이므로 수익률이 연 3.7%로 쪼그라든다.

그럼 보험사의 사업비가 얼마인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다시 미로를 헤매야 한다. 일단 홈페이지에 있는 ‘변액연금’ 코너에서 빠져나와 ‘상품설명’ 코너로 들어가야 한다.상품명을 입력해 검색한 뒤, 조그맣게 첨부되어 있는 ‘상품요약서’를 찾아내야 한다. 81페이지짜리 요약서 파일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68페이지에 ‘보험관계비용’이라는 복잡한 표 하나가 나온다. 이를 토대로 한참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A변액연금은 넣은 돈의 11% 정도를 사업비로 뗀다는 계산이 나온다. K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계약할 때 사업비가 얼마인지 설명해야 하는 법적인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상품별 비교가 불가능한 공시 정보

문제는 또 있다. 현재 생보협회 사이트에는 729개 변액연금상품의 정보가 공개돼 있지만, 소비자들은 어느 회사의 어떤 상품이 수익이 많이 나는지 비교할 수 없다. 상품별 전체 판매량 또한 공시되지 않아 어떤 게 베스트셀러 상품인지도 알 수 없다. 질병·사망 등을 보장해 주는 다른 보험상품과 비교해 노후 대비를 위해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변액연금은 상품별 수익률을 서로 비교해 보고 가입하는 것이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이는 금융투자협회가 펀드 공시를 통해 각 자산운용사의 펀드별 판매 규모, 펀드별 수익률, 판매보수와 수수료를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해 둔 것과 대조적이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계약 초기에는 사업비를 많이 떼고, 갈수록 사업비 몫이 줄기 때문에 가입자가 낸 실제 보험료 대비 평균 수익률을 산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노후 대비 수단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변액연금보험의 90% 이상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라는 컨슈머리포트가 나온 이후 자신이 가입한 변액연금보험은 어떤 상황인지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었다.

보험사가 수수료 식으로 떼어 가는 사업비는 얼마인지, 내 변액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얼마인지, 다른 보험사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상품인 건지…. 궁금한 점은 많은데 알아보기가 너무 어렵다. 보험사의 무성의한 태도와 불친절한 공시 시스템 때문이다.

◇불친절한 보험사 안내문

직장인 박모(37)씨는 2008년 초부터 노후 대비용으로 월 70만원씩 변액연금을 부었다. 변액연금 수익률이 형편없다는 보도가 나온 뒤 보험사가 분기마다 보내오는 운용설명서 봉투를 뜯어 봤다. 설명서엔 '이미 납입한 주계약 보험료 3500만원, 적립금 3754만원, 적립률 107%'라고 쓰여 있었다. 보험료는 낸 돈이고, 적립금은 지금껏 쌓인 돈이라는 말일 텐데, 적립률이라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 봐도 적립률밖에 알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