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포증 물렀거라… '바둑계 아이돌' 나가신다

한국 바둑계는 요즘 '중국 공포증'을 앓고 있다. 98년생 양딩신(楊鼎新) 리친청(李欽誠), 99년생 씨에얼하오(謝尔豪) 등 소위 '90후(後) 세대' 10여명이 연초 국제대회를 휩쓸다시피 했기 때문. 국내 희생자 명단에 이세돌 이창호 등 간판급 스타들도 포함되자 '한국 바둑 위기론'까지 등장했다. 국제 바둑 무대는 과연 중국 소년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진단한다. 한국에서도 만만치 않은 90년대 후반 출생 재주꾼들이 쑥쑥 성장 중이라는 것. '영재 조련사'로 유명한 한종진 八단은 "국내 최상위권 몇 명은 중국의 또래 유망주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한·중 영재들이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좋은 승부를 펼칠 것이라고 장담한다.

99년 이후 태어난 13세 이하 영재들 중에선 신민준(13) 신진서(12) 설현준(13) 삼총사가 특히 돋보인다. 신민준은 작년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대회 우승자. 올 8월 연구생 생활 만 4년을 맞는 '왕고참'이다. 한 살 위인 양딩신과 리친청에게 각각 2008년 및 2009년 세계청소년대회 결승서 패한 적이 있지만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국내 최연소 프로 이동훈(14)의 입단 전 최대 라이벌이 바로 신민준이었다. 이동훈 초단은 올해 초 중국 원정서 동갑내기 리친청에 이기고 양딩신에 패했다. 양딩신은 최근 제12기 이광배서 우승, 중국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신민준의 위상을 간접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신진서는 재작년 대한생명배를 제패했다. 부산 출신인 신진서는 작년 지역 연구생 입단대회서 양우석(17)에 아깝게 프로행 티켓을 내줬지만 역시 최근 급성장 중이다. 여섯 살 때 부산시장배에 나가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유단자부서 우승,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설현준도 4학년 때 열린 어린이 기왕전서 6학년생에 이어 준우승했던 기재(棋才). 최근 벌어진 충암도장과 녜웨이핑 도장 간 교류전에 2장으로 기용된 것만 봐도 그에게 쏠린 기대가 짐작된다. 여기서 설현준은 2~3살 위 중국 프로 저단진을 상대로 6승 4패를 기록 중이다.

한종진 八단에 의하면 신민준의 기풍은 최철한 또는 김지석을 닮았고 신진서는 이세돌류, 설현준은 이들 둘을 섞어놓은 타입이다. 셋 모두 탄탄한 수읽기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바둑을 구사하며, 전투형이면서도 계가가 강해 대성할 재목들이란 평을 듣고 있다.

이승준 최영찬 최원진(이상 99년생), 엄동건 박종훈 박진영 이청우(이상 2000년생) 등도 나현(95년생) 二단, 변상일(97년생) 이동훈(98년생) 초단의 그 나이 때보다 결코 못 하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기원 남자 연구생 128명 중 99년 이후 출생자(13세 이하)는 4월 9일 현재 16명에 달한다.

최근 윤진성 이예찬(이상 99년생), 윤성식(2000년생) 등이 새로 연구생 선발전을 통과했다. 2001년생 강우혁 채이현 등 새내기들은 프로 사범에게 정선(定先)에 덤 5집을 받는 치수로 푸른 꿈을 키우고 있다. 100여 명의 충암도장 원생들을 관리하는 양우정 실장은 "경쟁이 엄청 치열하지만 모두 자신감에 차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곳 원생들은 오전 학교수업 후 오후 7시간 이상씩 강훈을 소화하고 있다.

올해 여름 처음 실시될 영재 입단대회는 98년생이 연령 상한(上限)으로, 박하민 등 총 30여명이 대기 중이다. 입단 쿼터는 2명이지만 추후 어떤 형식으로건 늘어날 전망. 최규병 기사회장은 "영재 입단자를 선발한 뒤 국내 초일류들이 이들의 기보를 함께 검토하고 지도하는 연구 모임을 제도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