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저축만으론 힘든 결혼… 부모에 기대기 미안하지만 남들도 그렇게 해"

백화점 직원 김민준(가명·32)씨는 월급 250여만원을 받아 입사 후 첫 3년간 5000만원을 저축했다. 직장 선후배들이 "월급 모아 재벌 될 사나이"라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런 김씨도 결혼하려니 별수 없었다.

"제 저축에 지방대 교수인 아버지 저축 5000만원을 합쳐도 필요한 전셋값에 턱없이 모자랐어요. 부자(父子)가 각자 5000만원씩 대출받아 서울 양재동에 다세대주택(56㎡·17평)을 얻었어요. 부모님께 부담드리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살았는데 어쩔 수 없더군요. 제 힘으로 결혼하려면 마흔은 돼야 하잖아요."

50·60대 혼주들만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시리즈에 호응한 게 아니었다. 결혼 당사자인 20~30대 독자들도 수많은 댓글과 메일을 쏟아냈다. 이들의 심리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중 가장 뚜렷한 정서가 '무력감'이었다.

올 1월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조사한 국내 중견기업 대졸 신입사원 평균 초임은 3075만원이었다. 신랑·신부 두 사람이 3년 넘게 숨만 쉬고 모아야 평균 결혼비용 2억808만원을 모을 수 있다(조선일보·결혼정보회사 선우 공동조사).

이런 무력감은 ①부모에게 기대기 미안하지만 ②남들도 다 그렇게 하고 ③세상에는 '더 많이 지원받는 사람도 많다'는 심리로 이어졌다.

"연봉 높다는 대기업에 2년 다니며 2500만원 모았습니다. 하지만 결혼하려니 그 돈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결국 부모님이 노후 자금을 헐어 1억500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어주셨어요. 어차피 자기 힘으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부모님 도움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지금 제가 부모님에게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보다는 부담감에 가까운 것 같아요. 부모님이 노후 자금을 털었으니 부모님이 은퇴하면 제가 지원해 드려야 하잖아요."(독자 김종민·가명·29)

조선일보·선우 조사에 응한 사람들을 부모의 자산과 당사자 연봉에 따라 분석해 보니, 캥거루 결혼이 만연한 건 모든 계층이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심한 건 역시 유복한 가정이었다.

서민 부모(자산 5억 미만)와 중산층 부모(5억 이상~10억 미만)는 전체 결혼비용 중 절반 이하(15~50%)를 댔다. 신랑 연봉이 높을수록 부모의 부담이 줄고 본인이 더 많이 내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달리 유복한 부모(10억 이상)는 결혼비용 56~71%를 책임졌다. 신랑이 잘 벌수록 부모가 더 많이 보태주는 역전 현상마저 나타났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완전히 자기 힘으로 결혼하는 사람, 솔직히 한 명도 못 봤어요. 옛날엔 20대끼리 소개팅할 때 '어느 대학 다니냐' '남자 키가 몇 센티냐' 물었다는데 저희 또래는 그런 건 나중이에요. '아버지 뭐하시는데? 집 무슨 동에 몇 평 해줄 수 있는데?' 먼저 물어요." (정지혜·가명·31)

캥거루 결혼의 이면에 자리 잡은 게 '박탈감'이었다. 독자 이지영(가명·31)씨는 "기사 읽고 억울하고 쓸쓸하고 화난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남자친구와 6년 연애했습니다. 재작년부터 결혼하려 했는데, 경제적 여건 때문에 계속 미루고 있어요. 남자친구(34)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저희 부모님은 투병 중입니다. 웬만한 건 다 생략하고 간소하게 식 올리자고 약속했지만 지금 형편엔 그마저도 답이 안 보여요. 둘 다 나이도 많은데 결혼도 못하고…."

이런 무력감과 박탈감을 모두 딛고 일어서려는 젊은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본지와 여성가족부는 '100쌍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최소한의 예식 비용을 자기 힘으로 모아 1000만원 안팎으로 간소하게 식을 올릴 젊은이 100쌍을 선정해 아름다운 예식 공간을 연결해 주는 프로젝트다. 신청자 김묵현(가명·31)씨는 "박사 학위 딸 때까지 힘들게 뒷바라지 한 부모님에게 더는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 '최대한 우리 힘으로 결혼하자'고 여자친구와 약속했다"면서 "젊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출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