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혼자 가는 마지막 길, 함께해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 생김새도, 성격도, 살아온 인생도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은 암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의 마지막 여관에 속속 도착한다. 그들이 짊어지고 온 짐 꾸러미 속에는 인생을 지나오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쑤셔넣었던 슬프고 아픈 사연도 있다. 이들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의료적·사회적·영적인 돌봄을 통해 어루만지는 것이 호스피스 의료진의 일이다.

서른여덟 살의 미숙씨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였다. 그녀는 스물여덟 살 때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술과 항암치료를 씩씩하게 견뎌왔다. 가슴과 척추로 전이된 암세포로 골절이 생겨 자그마하던 키는 더 작아졌고, 부드러운 긴 머리카락도 항암제와 맞바꾸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편과 예쁜 딸을 생각하며 긴 투병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달 전 폐까지 암세포가 전이되면서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그녀를 힘들게 할 뿐인 상황이 됐다. 투병생활이 길었던 그녀에게 호스피스 의사인 나는 죽음의 사자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생명을 연장하던 항암치료를 중단시키는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와 내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미숙씨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뒤 침상에 틀어박힌 채 병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우선 그녀의 통증과 숨이 차는 증상을 조절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병에 걸리기 전 미숙씨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물어보았다. 쾌활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깊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환자의 발병(發病) 이전 성격을 찾아주는 것이다. 입원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때 그녀는 통증이 없어졌고 차츰 병실 밖 출입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출근하는데 미숙씨가 병동 복도에서 울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그녀가 너무나 서글퍼 보여 나는 가운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녀 옆에 쪼그려 앉았다. 한참을 함께 앉아 그녀의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떼를 쓰는 아이처럼 소리 높여 울기만 할 뿐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더니 그녀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어제 링거를 맞았는데 링거가 잘못 들어갔어요. 링거 맞은 데가 볼록 부었다고요."

그녀의 말처럼 오른쪽 팔뚝이 동전만한 크기로 부어 있었다. 미숙씨 남편은 그녀의 뒤에 우두커니 서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밤새 그녀를 간병한 남편은 간병인과 교대하고 일하러 갈 시간이었지만 울고 있는 아내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출근을 망설였다. 동네에서 중국 음식점을 하는 그는 하루 문을 닫으면 손해가 컸다. 미숙씨를 서럽게 한 일은 어차피 남편이 옆에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서 나는 그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 출근시키고 다시 미숙씨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간호사가 링거를 잘못 놓았어요. 그 간호사는 내가 미운가 봐요."

"어쩜, 미안해요."

"어떡해요. 팔이 이렇게 부었어요."

울음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미숙씨의 눈동자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 안에 드리워진 두려움의 그림자를 보았다. 미숙씨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링거나 간호사, 팔의 부기가 아니었다.

"미숙씨, 조금만 생각을 바꿔볼까요? 링거 맞은 자리가 부었다고 우는 환자는 별로 없어요. 링거를 잘못 놓은 간호사가 미운 게 아니라 또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무서운 거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예요. 부은 자리는 더운 수건으로 찜질하면 좋아져요."

건강검진센터 일을 마치고 호스피스 병동에 들렀을 때 미숙씨는 '행복한 노래교실'에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래교실이 시끄럽다고 병실 문을 꼭꼭 닫고 귀마개까지 했던 그녀였다. 그런 미숙씨가 그날은 사람들과 어울려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열창하고 있었다. 빠른 곡(曲)이라서 숨은 차 보였지만 노래를 부르는 미숙씨의 얼굴은 아침과 전혀 딴판이었다. 우리끼리만 행복한 게 미안해 미숙씨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미숙씨 남편에게 보냈다. 답장이 왔다. '무조건 불렀겠죠